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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판사님, 이런 법이 어딨나요?

입력
2019.06.2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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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범을 징역 3년으로 감형한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아동 성폭행범을 징역 3년으로 감형한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런 법이 여기 있다. 10세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형을 받은 남성이 2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을 받은 것이 사회적 논란이 되자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보도자료를 내며 해명하였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직접적인 협박과 폭행의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여 공소장에 적시된 강간죄는 무죄에 해당하지만, 재판부의 사회적 정의감에 따라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그나마 적용하여 3년 징역형으로 판결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아동 피해자를 재판정에 증인으로 신청하였으나 증언을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었다고 한다. 오직 법에 따라 판단하고 심판하는 집단의 해명이니, 아마도 그런 법이 있는 게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다.

법조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에 적용되는 법적 용어들은 간단한 검색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강간죄는 폭력과 협박을 동원해 강제로 성폭행을 하는 죄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게 되면 성립된다. 위의 재판 과정에 따르면, 10세 아동을 강간하더라도 징역 8년형에 불과하고, 10세 아동과 성관계에 폭행과 협박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징역 3년형에 처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동의 진술은 증거가 될 수 없으니, 피해 아동은 폭행 순간에 휴대전화로 녹음이나 촬영을 해 증거를 남겨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폭행을 당한 후라면 가까운 병원에 가서 몸에 남은 증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대한민국 법이 이토록 놀랍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법은 14세 이상부터는 성인과의 섹스를 결정할 수 있는 의사능력이 적극적으로 인정된다. 대통령은커녕 기초의원 하나 뽑을 권리는 없지만, 성관계에서만큼은 대단한 주체성을 강제로 부여받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강간 피해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달리 말해 합의하지 않았음을, 유혹하지 않았음을, 대가를 받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피해자다움을 유지해야 함은 덤이다. 재판부의 해명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인 10세 어린이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 그날의 상황과 기억을 또박또박 이야기해야 했다. 어린이라 하더라도, 지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준엄한 법의 원칙은 언제나 추상같은 것이다.

법의 원칙이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우리와 같은 범인이 쉽게 헤아리기 어렵겠지만, 가해자가 아동에게 소주를 먹였다든가, 그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 원장이라든가 하는 버젓한 사실들은 법에 있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때로 가해자의 음주는 심신미약의 원인이 되어 법 집행의 느슨함을 돕지만, 피해자의 음주는 그럴 일을 당할 만한 행실의 원인이 되고는 한다. 어떤 가해자는 앞날이 창창해서 감형받는다. 어떤 가해자는 가장이라고 감형받는다. 어떤 가해자는 수백 건의 불법 촬영이 적발되었는데, 초범이라 하여 감형받는다. 이번 가해자도 감형받았다. 10세 아동의 어깨를 누르고 성관계를 했지만, 폭행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법이 이토록… 아니, 별로 놀랍지도 않다.

대한민국 국민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광장에 매달아 돌팔매질하거나 동네 공터에서 멍석말이를 하지는 않는다. 법이 있기 때문이다. 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법을 믿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자들은 시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청소년과 아동에게는 그 의무가 더욱 막중할 것이다. 지금 그들은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법을 믿을 수 있는가?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야 한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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