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네가 뭔데”… 보수적인 대구에 감정노동자 ‘감정’ 많다

알림

“네가 뭔데”… 보수적인 대구에 감정노동자 ‘감정’ 많다

입력
2019.06.18 18:00
수정
2019.06.18 18:28
0 0

 <상> 사각지대에 놓인 대구 감정노동자

대구 중구 반월당 제2고객센터 역무원이 18일 고객센터에서 탑승 고객들을 살펴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중구 반월당 제2고객센터 역무원이 18일 고객센터에서 탑승 고객들을 살펴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감정노동자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다. ‘대구시 감정노동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18일 대구시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28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대구시 감정노동자의 현주소와 조례에 대한 기대와 한계 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1 최근 롯데백화점 상인점 의류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모(42)씨는 백화점 규정대로 고객에게 응대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옷을 입어본 후 한참 지나 환불해달라는 고객에게 “규정에 어긋나서 안된다”고 했다가 “네가 뭔데 안된다는 거냐”는 고함을 들은 것이다. 정씨는 “그날 이후 조금만 큰 소리를 내는 손님이 와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2 지난해 12월 말 대구도시철도 1호선 반월당역에 20대 남성이 전동차를 타러 뛰어들어왔다. 역무원이 “막차가 떠났다”고 했는데도 플랫폼에 뛰어든 남성은 안내원에게 30분간 폭언을 퍼부은 후 매표소 출입문을 박살냈다. 폭언을 들은 40대 직원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2018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같은 해 10월부터 시행되었지만, 감정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의 대구는 타 도시보다 조례 제정도 늦어 감정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감정노동은 손님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이 좋거나 슬퍼거나 화나는 상황이 있더라도, 기관에서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대로 응대 업무를 하는 노동을 뜻한다. 고객을 대면 또는 통신 등으로 상대하는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 괴롭힘으로 건강 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주는 업무를 중단시켜야 하지만 ‘업무 특성상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올 1월30일부터 2월11일까지 공사 근무자 720명을 대상으로 ‘폭언, 폭행 등 고객 불량행동 대응방안 수립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업무 수행시 △고객에게 폭력을 당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 40명(5.2%), ‘그렇다’가 183명(23.8%)이나 됐다.

△고객에게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 등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항목에는 ‘매우 그렇다’ 127명(16.5%), ’그렇다’에 323명(42.1%)이 응답했다. △업무상 고객을 대하는 과정에서 나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 195명(25.4%), ‘그렇다’에 398명(51.8%)이 응답하면서 절반이 훨씬 넘는 77.2%의 직원이 감정 노동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 중구 반월당 제2고객안내센터에서 근무하는 고모(28) 역무원은 “어르신 탑승 비율이 많은 오후 2~4시, 취객 탑승 비율이 증가하는 막차 즈음 폭언 등을 하는 탑승객이 많다”며 “본인의 실수로 발생한 문제도 먼저 사과부터 드리고 해결을 하는데, 탑승객이 떠나도 30분 이상 머리가 아프고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대구시설공단 직원들도 콜센터 직원에 대한 전화 폭언, 욕설 영남대병원은 접수 및 진료비 정산 과정에서 폭언 등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들은 지금까지 기관들은 직무 스트레스 검사와 템플스테이 등 체험 행사, 통화연결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내용 음성 안내 등을 임시 방편으로 운영하는데 그치고 있다.

김명섭 대구도시철도공사 법무부 부장은 “지난해 10월 개정 이후, 올 1월부터 대구시에 감정 노동자 보호 조례 입안을 요청했지만 행정력 부족을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말에 영남대병원과 대구백화점 대구시설공단 등과 함께 ‘감정노동 힐링365’ 캠페인을 펼치는 등 감정노동자에 권익 보호를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2016년 1월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광주가 2016년 7월, 대전 2017년 10월, 전북 전주 2017년 3월, 전북도가 2017년 11월에 각 지자체 산하 기관 등에 근무하는 감정노동자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대구시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를 대표발의한 김성태 대구시의원은 “대구는 성향과 말투 등 지역 특성 상 감정노동자 비율이 높은 도시”라며 “대구시 소속기관 및 시 산하 공기업 출자출연기관의 감정 노동자들과 면담을 진행해온 결과 극한 환경에 처해있는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조례를 제정했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