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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 김모(31)씨는 고용한 가사도우미가 값비싼 냄비를 태웠지만 배상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인에게 소개 받은 분인데,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물어달라고 말하면 야박하다고 뒷말이 나올 것 같아 그냥 넘겼다”고 말했다. 만약 믿을 만한 업체를 통해 도우미를 고용했다면, 업무상 발생하는 사고는 보험 등의 대비책이 마련돼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경기 수원에서 가사도우미로 2년째 일하는 박모(52)씨는 매번 일이 끊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박씨는 주로 가사도우미 소개 업체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데, 고객의 사정에 따라 일감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한번은 고객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약속한 급여를 깎고 계약도 파기한 적이 있는데, 기준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며 “이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고객 기분을 맞추려 참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회 다변화로 가사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가사노동은 여전히 비공식 시장에 머물러 있다. 가사도우미는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이어서 최저임금, 연차휴가,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같은 4대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가사노동 종사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정부 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법안 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국회의 무관심 속에 1년6개월째 잠자는 실정이다.

18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을 담아 고용노동부가 2017년 12월 발의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안’(가사특별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특별법엔 가사근로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정부가 인증하는 제공기관 중심으로 공급 시스템을 재편해 가사서비스를 양성화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고용부보다 앞서 서형수 의원, 이정미 의원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제정법을 발의한 상태다.

이용자나 가사근로자 모두 ‘윈-윈’하기 위해선 가사노동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있다. 18ㆍ19대 국회에서는 김춘진 의원과 이인영 의원이 각각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정부안이 발의돼 기대를 모았지만, 법안 발의 1년 4개월 만인 지난 3월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됐을 뿐이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2018년 3월 관련법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후 1년여 만에 소위에 상정돼, 환노위 의원들마저 해당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회가 무관심하다 보니 노동계와 산업계 모두 애가 타는 상황이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10년 넘게 제기해 온 사안인데 현 정부에서 법안이 발의되면서 오히려 야당 의원들의 무관심과 외면이 더 심해진 것 같다”며 “법안이 통과돼 정식 고용 업체가 늘어야 중년 여성들의 일자리가 안정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사서비스를 중계하는 플랫폼 기업들도 산업 발전을 위해 관련법 통과를 바라고 있다. 앞서 17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국회를 찾아 전달한 경제 활성화와 규제개혁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요구안에도 관련 내용이 담겼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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