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리 오리나무

응암동 살구나무와 초과리 오리나무. 사는 곳도 다르고 나무의 특징도 전혀 다른 이 두 나무의 공통점은 그동안 보호수였으나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검토되고 있는 나무들이라는 것입니다.

살구

서울시 응암동 살구나무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았을 때는 한창 재개발 아파트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고 있는 회색빛 콘크리트 아파트 사이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살구나무는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높이는 13m에 달하고 뿌리 근처의 둘레는 4.5m 정도로 언제나 보아왔던 마당 가의 살구나무와는 풍모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직도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 그 큰 나무 가득 분홍빛 살구꽃이 가득하고 노랗게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요즈음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에도 차들은 지하로 보내고 지상은 모두 정원을 만드는 경우도 많고, 아파트의 격을 높인다고 고급 조경수를 심고 있습니다. 많은 비용을 들일만큼 초록빛 자연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이토록 아름답고 기품있는 국가급 보물이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은 앞으로 입주할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현재 서울시 보호수여서 땅은 시 소유인 데다가 기념물로 지정된다면 최고의 관리까지 국가가 알아서 해주니 재산상의 손해 볼 일이 전혀 없이 오히려 가치를 높여 주어 환영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저하고는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초과리 오리나무

포천 초과리의 오리나무는 한창 자라고 있는 벼들이 초록빛 물결처럼 일렁이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논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국도에서 마을로 접어들자 멀리서도 나무가 보였습니다. 어떤 조건에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하게 자란 오리나무는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려하고 온전하게 자란, 21m가 넘게 큰 오리나무였습니다. 습지가 육지화되어가는 초기에 유입되는 나무이기도 하고, 나무 타령에 나오는 십리정만 오리나무라는 대목처럼 오리(五里)마다 하나씩 심는 이정표나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통혼례에 신랑이 갖는 나무 기러기를 만드는 나무이기도 할 만큼 우리와 가까웠지만 이제는 흔히 보기 쉽지 않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만나러 가니 마을 어르신들께서 한 분 두분 모이셔서 이야기들을 들려주십니다. 당신들이 어린 시절, 동네 꼬마들이 모여 나무 타고 불피우며 놀던 놀이터였던 추억도 나오고, 사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단옷날 그네 매던 가지도 알려주십니다. 살아계셨다면 130세가 되셨을 할머니께서 시집오실 때도 이미 이 나무는 거목이었으니 200살이 넘는다는 나무의 나이는 과소평가된 것이라며 300~400살은 되었을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오리나무는 마을의 상징이기도 자랑이기도 한 추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 모여서 나무와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따사로운 행복이었습니다.

초과리의 오리나무에는 좋은 과일이 많이 열려 고을 수령에게 바치는 수탈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고초를 받자 지나가던 스님이 과실이 열리지 않는 오리나무로 변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응암동의 살구나무 유래는 김씨성을 가진 아주 가난한 청년이 살구나무 몇 그루 얻어다 심으며 나무들이 커서 열매가 가득 달릴 때까지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겠노라고 결심해 그 꿈을 이뤘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손에게 신식교육을 시키고 일제 강점기에 높은 벼슬을 얻어 백성들을 괴롭히자 열매는 열지 않았고 그 일이 마음에 걸려 고뇌하던 그가 죽자 다시 열매가 많이 열리며 오늘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같은 듯했지만 전혀 다른 상황과 의미를 담고 있는 두 나무, 부디부디 오래오래 살아 후대에 이 시대의 이야기를 전해주길 고대해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