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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충신, 두 명의 천사 품은 녹동항…금계국은 무심한 듯 활짝

입력
2019.06.18 18:00
수정
2019.06.19 15: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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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작 소읍탐방] ‘천형의 땅’에서 ‘천사의 섬’으로…고흥 도양읍 녹동항과 소록도

해질 무렵의 녹동항. 인공섬으로 조성한 ‘바다정원’은 녹동의 새로운 명물이다. 어둠이 내리면 소록대교(뒤편)와 함께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낭만을 더한다. 고흥=최흥수 기자
해질 무렵의 녹동항. 인공섬으로 조성한 ‘바다정원’은 녹동의 새로운 명물이다. 어둠이 내리면 소록대교(뒤편)와 함께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낭만을 더한다. 고흥=최흥수 기자

오전 9시30분 금당도ㆍ충도ㆍ금일도 등 완도의 여러 섬을 연결하는 도선이 녹동항에 섬 주민을 내리고 태운다. 그사이 제주행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간다. 배는 옅은 바다 안개에 윤곽이 희미해진 소록도와 거금도 사이 물길로 서서히 사라졌다. 전남 고흥군 서쪽 끝자락 녹동항은 득량만 일대에서 가장 큰 포구다. 인구와 경제 규모에서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에 뒤지지 않는다. 여객선터미널 주변에는 아침 배를 타려는 승객들이 묵을 숙박 업소가 몰려 있고, 아침마다 싱싱한 수산물이 한 가득 부려지는 부두 주변엔 까다로운 외지인의 입맛을 실망시키지 않을 횟집과 식당이 즐비하다.

◇다도해의 관문, 녹동항의 두 충신과 두 천사

지금은 녹동이지만 그 옛날엔 녹도(鹿島)라 불렸다. 밀물이 가장 높은 한사리 때면 바다에 둘러싸인 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양이 사슴 머리 같아서 녹두(鹿頭)라 불리기도 했다. 행정구역상 고흥군 도양읍이다.

녹동항의 일몰. 항구에서 바다정원을 연결하는 다리 뒤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녹동항의 일몰. 항구에서 바다정원을 연결하는 다리 뒤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이대원과 정운, 두 충신을 기리는 쌍충사.
이대원과 정운, 두 충신을 기리는 쌍충사.
쌍충사 뒤편 공원에 녹도진성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쌍충사 뒤편 공원에 녹도진성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읍내가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근래에 개설한 항구 같지만, 포구 옆 작은 언덕에 오르면 녹동의 옛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언덕 꼭대기에 쌍충사라는 작은 사당이 있다. 충열공 이대원(1553~1587)과 충장공 정운(1543~1592)을 배향한 곳이다. 31세에 무과에 급제한 이대원은 서른 셋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녹도만호에 부임하고, 이듬해 손죽도(현 여수) 해전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막강 화력을 갖춘 왜구에 조선 수군은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는데,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던 이대원도 ‘군사는 적고 형세는 끊겨’ 결국 순절하게 된다. 정운은 1591년 49세에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ㆍ당포해전ㆍ한산해전 등에 참전해 눈부신 공을 세웠고 부산포해전에서 적을 추격하다 몰운대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사당 뒤편 공원으로 나가면 두 충신의 동상과 근래에 복구한 녹도진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드론에서 찍은 녹동항과 바다정원. 야간 경관 조명이 바다 정취를 더한다.
드론에서 찍은 녹동항과 바다정원. 야간 경관 조명이 바다 정취를 더한다.
바다정원의 감성돔 조형물.
바다정원의 감성돔 조형물.
바다정원의 사슴 조형물. 녹동은 사슴머리, 다리건너 소록도는 아기사슴을 닮았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바다정원의 사슴 조형물. 녹동은 사슴머리, 다리건너 소록도는 아기사슴을 닮았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어선 한 척이 석양이 떨어진 바다를 가르며 녹동항으로 귀환하고 있다.
어선 한 척이 석양이 떨어진 바다를 가르며 녹동항으로 귀환하고 있다.

쌍충사를 빼면 읍내에 녹동의 옛 모습을 짐작할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침마다 활어 경매가 열리는 회 센터와 장어거리, 이곳에서 도보 다리로 연결된 ‘바다정원’이 녹동의 새 상징물로 들어섰다. 포구 앞바다에 원형으로 조성한 바다정원엔 감성돔과 사슴 조형물을 포토존으로 이용하도록 꾸몄다. 호젓하게 산책하며 포구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소록대교 너머로 붉은 노을이 떨어지고 나면 알록달록한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녹동의 밤을 낭만으로 물들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전시실의 마리안느 사진.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전시실의 마리안느 사진.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전시실의 마가렛 사진.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전시실의 마가렛 사진.
전시실 내부에 연표 형식으로 두 간호사의 헌신을 기록해 놓았다.
전시실 내부에 연표 형식으로 두 간호사의 헌신을 기록해 놓았다.

녹동 바로 앞 소록도는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다. 쌍충사 인근 소록대교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올 3월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이 들어섰다. 이대원과 정운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이라면,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인류애가 어떤 것인지 몸소 실천한 푸른 눈의 천사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5)와 마가렛 피사렉(84)은 각각 1962년과 1966년 소록도에 들어와 40여년간 한센인을 돌보는 데 헌신했다. 의사조차 환부에 직접 손대기를 꺼리던 시절 두 사람은 맨손으로 환자의 고름을 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둘의 소리 없는 헌신은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의 싸움이었고,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한센인에게 커다란 위로였다. 소록도의 두 천사는 그러나 2005년 주변에 짐이 되지 않겠다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둘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소록도는 차츰 ‘천형의 땅’에서 ‘천사의 섬’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옆 산책로에 금계국이 화사하게 피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 연수원 옆 산책로에 금계국이 화사하게 피었다.
산책로를 따라 꼭대기 전망대에 닿으면 소록대교와 소록도가 바로 앞에 펼쳐진다.
산책로를 따라 꼭대기 전망대에 닿으면 소록대교와 소록도가 바로 앞에 펼쳐진다.

연수원 전시실 입구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위한 서명대가 놓여 있다. 내부엔 두 사람의 사진을 연표와 함께 전시하고, 그들이 지낸 소록도의 소박한 숙소 내부를 재현해 놓았다. 테라스로 나가면 ‘아기사슴 섬’ 소록도와 병원 시설이 바다 건너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연수원 정면 우측에서 산마루까지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약 500m 길 양편으로 두 천사를 그리듯 금계국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전망대에 닿으면 소록도와 소록대교의 모습이 한층 또렷하다.

나로우주센터가 들어선 이후 고흥은 우주와 뗄 수 없는 곳이 됐다. 외나로도와 60km 떨어진 녹동 장계산에도 고흥우주천문과학관이 들어섰다. 밤하늘 별을 관찰하는 시설이지만 낮에는 바다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과학관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소록도와 거금도 등 고흥뿐만 아니라 완도ㆍ진도로 이어지는 다도해 풍경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고흥우주천문과학관 주차장에서도 다도해 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고흥우주천문과학관 주차장에서도 다도해 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아기 사슴의 눈망울처럼….차마 아름답다 할 수 없는 풍경들

녹동항에서 소록대교를 건너면 바로 소록도다. 작은 사슴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소록도다. 소록도의 역사도 선한 눈망울 때문에 더욱 애처로운 아기 사슴을 닮았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가 자혜병원을 개원한 이후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하는 수용시설이 됐다. 섬 중앙에서 우측은 직원들이 생활하는 관사 지대, 병원이 있는 왼쪽은 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구분돼 있었다. 소록도엔 6,000명이 넘는 한센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고령이 된 550여명이 마을과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이 중 환자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완치된 상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기거했던 집. 내부는 볼 수 없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기거했던 집. 내부는 볼 수 없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떠난 후인 2006년 보건복지부에서 ‘두 사람의 참뜻을 기리며’ 명패를 붙였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떠난 후인 2006년 보건복지부에서 ‘두 사람의 참뜻을 기리며’ 명패를 붙였다.

섬 전체가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고립돼 있던 섬은 2009년 다리로 연결되면서 연간 30만명 이상이 찾는 곳이 됐다. 그러나 관광 시설이 아니라 병원이다 보니 갈 수 있는 지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주민이나 병원 관계자가 아니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관사 지대에서 외부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소록성당까지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거주했던 집도 이 길에 있다.

주차장에서 병원에 이르는 도로를 초창기 수감 환자들은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렀다. 가족을 코앞에 두고도 한 번 안아 보지 못하고 슬피 탄식하는 장소라는 의미다. 병사(病舍) 지대에 거주했던 환자와 관사 지대에 살던 미 감염 자녀는 한 달에 한 번 이곳에서 만났다. 하지만 감염을 우려해 접촉하지 못하고 양편으로 늘어서서 눈으로만 그리움을 전했다. 병원 초입에도 ‘애한의 추모비’가 남아 있다. 광복 직후 자치권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가 죽임을 당한 원생 84명을 추모하는 비다. 현재는 수탄장 도로와 나란히 울창한 솔숲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안내판을 유심히 읽지 않으면 약 500m 해변 산책로에서 당시의 아픔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한센인이 가족과 접촉하지 못하고 눈물로 만났던 수탄장.
한센인이 가족과 접촉하지 못하고 눈물로 만났던 수탄장.
현재 수탄장 옆으로 바다와 나란히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현재 수탄장 옆으로 바다와 나란히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검시실과 감금실은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시설이다.
검시실과 감금실은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시설이다.

병원 뒤로 이동하면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무단으로 해부한 검시실, 부당한 처우에 항거한 원생을 격리하고 강제로 단종 수술한 감금실이 아픔의 유물로 남아 있다. 감금실과 검시실 뒤편은 이런 무시무시한 이름과 대비되는 중앙공원이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원생들의 복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성했지만, 결국 몸이 성치 않은 환자들의 피와 땀과 한이 서린 노동의 산물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원예사와 설계사를 불러 조성한 공원엔 현재 반송, 솔송, 섬잣나무, 황금편백 등 희귀 수종이 단정하게 자리 잡았다. 반송 군락이 감싸고 있는 언덕에는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원래 일본인 스오 마사스(周防正季) 원장이 자신의 동상을 세워 놓은 자리였다. 그는 결국 강제 노동과 가혹 행위를 참다 못한 원생들에게 살해당한다. 기념비 앞에는 한센인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가 놓였다.

반송이 정갈하게 자리잡은 소록도 중앙공원. 스오 원장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 현재는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반송이 정갈하게 자리잡은 소록도 중앙공원. 스오 원장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 현재는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소록도 병원 뒤편의 타일 벽화.
소록도 병원 뒤편의 타일 벽화.

소록도에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원생들의 고통이 중첩된다. 무심하게 자란 나무는 6월의 햇살에 더없이 빛나고 공원은 깔끔하게 정비됐지만 차마 아름답다 하기 힘들다. 소록도엔 이외에도 사망한 환자를 위로하기 위한 만령당, 얕은 바다 위에 세운 식량창고 등 등록문화재 11점이 있지만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에 위치한다.

중앙공원에서 병원 뒤로 나오면 ‘소록의 꿈’이라는 타일 벽화가 옹벽을 장식하고 있다. 주민의 환한 표정이 모이고 모여 한 마리 작은 사슴이 되었다. 선한 의지와 희망을 품은 눈망울이다.

◇고흥 도양읍 여행 정보

지금부터 갯장어가 제철이다. 녹동항 식당은 샤브샤브보다 식감 좋은 회를 추천한다.
지금부터 갯장어가 제철이다. 녹동항 식당은 샤브샤브보다 식감 좋은 회를 추천한다.
바지락 해장국도 해산물이 풍부한 녹동항에서 맛볼 수 있는 아침 메뉴다.
바지락 해장국도 해산물이 풍부한 녹동항에서 맛볼 수 있는 아침 메뉴다.
거금도휴게소의 매생이호떡. 매생이는 아무 맛이 없는 재료라 쑥 향을 첨가했다.
거금도휴게소의 매생이호떡. 매생이는 아무 맛이 없는 재료라 쑥 향을 첨가했다.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녹동시외버스터널까지 하루 5회(우등 4회)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서울에서 녹동까지는 약 400km, 운전이 쉽지 않은 먼 길이다. 고속철로 순천까지 이동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순천역에서 녹동항까지는 약 1시간 거리다. △소록도에서 거금대교를 건너면 고흥에서 가장 큰 섬 거금도다. 거금대교는 상부는 차량, 하부는 자전거 전용 도로다. 다리 건너 거금도휴게소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차가 많지 않은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녹동항 장어거리에 전문식당이 여럿 있다. 지금부터 갯장어가 제철이다. 샤브샤브도 좋지만 이곳에선 회를 더 추천한다. 거금도는 매생이 주요 생산지다. 거금도휴게소에서 쑥 향을 첨가한 매생이호떡을 맛볼 수 있다.

고흥=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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