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좋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이 긍정 에너지로 작용해 힘든 상황도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은 것 같다”고 제작 과정을 돌아봤다. 홍윤기 인턴기자

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순간 봉준호 감독 곁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봉 감독의 영화 동반자인 배우 송강호, 그리고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51) 대표다. 봉 감독 스스로 “큰 모험”이라고 했던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결실을 얻은 데는 곽 대표의 아낌없는 지지와 헌신이 있었다. 17일 서울 한남동 바른손이앤에이 사무실에서 만난 곽 대표는 “올해 상반기에 가장 운수 좋은 영화인은 내가 아닐까 싶다”고 웃음지으면서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자신을 낮췄다.

칸에서 돌아온 지 3주가 흘렀지만 곽 대표는 “그때도 지금도 모든 순간들이 영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시상식 무대 위에서 송강호와 귓속말을 나눈 것도,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포옹을 나눈 것도, 나중에 영상을 찾아 보고서야 알았을 정도다. “심사위원대상(2등상)에 다른 영화가 호명됐을 때 온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봉 감독님이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건 처음인데 그게 황금종려상이라니!”

꿈 같은 시간이 흘러가는 중에도 ‘기생충’과의 첫 만남은 날짜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다. 2015년 4월 중순, ‘기생충’ 줄거리를 담은 트리트먼트를 사이에 두고 봉 감독과 회의실에 마주앉았다. 곽 대표는 “왠지 모르게 ‘봉준호의 2기’를 시작하는 첫 작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2017년 12월 30일, 마침내 완성된 시나리오가 건너왔다. 종무식을 마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단숨에 읽었다. “봉 감독님에게 초고, 재고(再稿) 같은 건 없어요. 완고라고 생각해야 밖으로 꺼내 보이는 분이죠. 저절로 팬심이 샘솟는 시나리오였어요. ‘너무 좋고, 너무 슬프다’고 메시지를 보냈죠. ‘슬프다’는 말에 감독님이 특히 만족스러워하셨어요.”

충무로 제작자들은 새드엔딩을 가장 두려워한다. 쾌감이 있어야 흥행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곽 대표는 “‘기생충’은 그 자체로 충분했고 스토리텔링이 주는 쾌감이 놀라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를 보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면 그건 실제 현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잖아요. ‘기생충’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현실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한지 보여 주면서 ‘이대로 정말 괜찮냐’고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존엄, 제도적 측면에서 사회안전망 등을 고민하도록 자극하고 동기부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송강호가 촬영하는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비극으로 흘러가지만 촬영 과정은 희극 그 자체였다. 곽 대표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보다 더 밝게 웃었다. “배우들이 인터뷰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잖아요. 감독님이 정말 유쾌하고, 센스 있고, 배려심이 남다르다고. 저도 똑같아요. 문자 메시지 하나에서도 느껴져요. ‘봉비어천가’를 부르면 안 되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설국열차’(2013)에 출연한 배우 크리스 에번스는 이렇게 말했다. “봉 감독 머릿속엔 완벽한 편집본이 있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급이 다른 천재다.” 곽 대표가 첨언했다. “맞아요. 의사결정이 명확하고, 작업 과정이 굉장히 효율적이에요. 모든 스태프를 창작자로 예우하고요. 그러기까지 머릿속에서 얼마나 무수히 시뮬레이션을 했을까.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그만큼 영화를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봉 감독의 설계도엔 오차가 없었다. 곽 대표는 “우주의 기운이 몰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전 부문에서 호흡이 잘 맞을 수 없다”며 감탄했다.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정재일 음악감독, 최세연 의상감독 등 충무로 최고 실력자들이 합류했고, 자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투자사까지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반지하 세트에 물을 채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제작비도 많이 들고요. 그 장면의 의미에 모두가 동의하니까 돈이 더 들어도, 작업 과정이 힘들어도 해내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돌이켜봤는데 좋은 영화에 참여한다는 자부심, 좋은 감독님과 함께하는 행복감 때문인 것 같아요.”

훌륭한 감독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각 있는 제작자, 뛰어난 스태프, 출중한 배우가 힘을 보태야 가능하다. ‘기생충’은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진 영화였다. ‘기생충’을 함께 만든 사람들이 모든 촬영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남겼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곽 대표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94년 창간한 영화전문지 키노에 몸담았던 영화기자 출신이다. 1997년 영화홍보대행사에 합류하며 마케터로 변신했고, 청년필름, 엘제이 필름, 신씨네 등에서 10여년간 마케팅 책임자로 일했다. 현 제작사에 합류한 건 2010년이다. 이후 제작 부문 책임자가 2015년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으로 넘어왔다. 남편 정지우 감독과 친오빠인 곽경택 감독은 곽 대표가 주저할 때 “저절로 찾아온 기회이니 용기내 도전하라”고 격려했다. 강동원이 주연한 ‘가려진 시간’(2016)으로 처음 제작자 타이틀을 달았고, 두 번째 제작 영화인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결코 행운만은 아니다. 기자로, 마케터로, 프로듀서로, 20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 온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제작자로서 곽 대표의 꿈은 무얼까. “제 역할은 감독님들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게 지원하는 겁니다. 제작자로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데 무얼 더 바라겠어요(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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