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사회장으로 치러진 고 이희호 여사 추모식에 영정이 올려져 있다. 연합뉴스

<6월 12일자 코리아타임스 사설> 

여성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전 영부인(Former first lady pioneered women's movement) 

Following the death of Lee Hee-ho (1922-2019) Monday, many Koreans are revisiting the life of the former first lady, the wife of the late Kim Dae-jung who served as president from 1998 to 2003, after years of struggle as a dissident leader during Korea's authoritarian rule in the 1970s and 80s.

월요일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의 일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고하고 있다. 그의 남편은 1970~80년 독재정권에 맞서 수년간 싸우다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대통령으로 지냈다.

The younger generation of Koreans probably knows Lee mostly as an elderly widow of the former leader who realized the first ever inter-Korean summit in June 2000 in Pyongyang. But before she married Kim, Lee was a pioneering Christian activist for women's rights at a time when most of the nation's women had no status at home or in society, and were unable to speak up against the discrimination and abuse they faced. This unique background sets her apart from other Korean first ladies who did not have a distinct identity of their own or a career other than being a spouse.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고인을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한 김 전 대통령의 연로한 미망인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인은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무런 지위가 없고, 그들이 직면하는 차별과 학대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에 여권 신장에 앞섰던 기독교 운동가였다. 이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그녀는 배우자 이외는 별 다른 정체성이 없었던 다른 한국 영부인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Born to a well-to-do doctor's family in 1922, she was one of the first-generation of Korean intellectual women to study abroad after the 1950-53 Korean War. After graduating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s College of Education in 1950, she studied sociology in the U.S. and taught at Ewha Womans University. At the time of her marriage to Kim in 1962, she was serving as the secretary-general of the Korean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YWCA), a movement of women working for social change. She was also involved in establishing organizations for women's studies and worked with various entities such as the Korean National Council of Women to lead social campaigns for gender equality, including a revision of the Family Law.

1922년 유복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1950~53년 한국전쟁 이후 유학한 한국 여성 지식인 1세대로 꼽힌다.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했다. 1962년 결혼 당시 사회 변혁을 위해 일하는 여성의 운동인 한국여성기독교총연합회(YWCA)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여성 연구 단체 설립에도 관여했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다양한 단체와 협력해 가족법 개정 등 양성 평등을 위한 사회 운동을 주도했다.

Kim often said he was profoundly influenced by his wife. Lee's impact on the former president can be seen most evidently in his special focus on promoting women's rights after he arrived at Cheong Wa Dae. During Kim's presidency, there was some noticeable headway made to protect women and improve their status. He established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increased the number of female ministers and presidential secretaries. The domestic violence prevention act was enacted only in 1998 and the anti-gender discrimination act in 1999.

김 전 대통령은 종종 아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취임 후 여성 권리 증진에 각별한 신경을 썼던 것을 보면 고인이 남편에게 끼친 영향을 재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여성을 보호하고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몇 가지 눈에 띄는 진전이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신설되고 여성 장관과 비서관들이 증가했다. 가정폭력예방법은 1998년에, 성차별금지법은 1999년에 제정되기도 했다.

Lee is also remembered as a passionate activist for inter-Korean peace alongside her husband and even after his death in August 2009. She visited North Korea with her husband in 2000 for the inter-Korean summit with the North's leader Kim Jong-il, the incumbent's father. When the North Korean leader passed away in 2011, Lee visited Pyongyang to offer her condolences in person. Her last visit was in 2015.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생전뿐 아니라 2009년 8월 서거 후에도 남북 평화를 위한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는 2000년 북한 현 지도자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을 방문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이희호 여사는 평양을 방문해 직접 조문했다. 그녀의 마지막 방북은 2015년이었다.

The Kim Dae-Jung Peace Center released a statement Tuesday and said the late former first lady's last wish was for the unity of the nation and reconciliation of the two Koreas. Her tireless efforts as a social activist and messenger of peace will be remembered for a long time.

김대중평화재단은 화요일 고인의 마지막 소망은 국가 통합과 남북한의 화해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사회운동가이자 평화의 전달자로서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의 헌신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Lee's wish resonates in the hearts of Koreans who hope and pray for a breakthrough in inter-Korean relations and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고인의 마지막 소망은 남북 관계의 진전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희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많은 한국인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안성진, 코리아타임스 어학연구소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