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자기명가 심수관가의 제14대 심수관씨가 16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2004년 촬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16세기말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로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인 사쓰마도기(薩摩焼)를 이어온 일본 도예가 14대 심수관(沈壽官)씨가 16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심수관가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인 심당길(沈當吉)과 그 후손들이 규슈(九州) 남쪽 가고시마(鹿兒島)현 미야먀(美山)에 정착해 일군 도자기 명가다. 당시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은 번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로부터 사족(士族ㆍ사무라이) 대접을 받으면서 조선 백자를 재현해 냈다.

심당길은 조선식 가마를 고집하면서 함께 끌려간 도공 박평의(朴平意)와 함께 ‘불만 일본 것이고 나머지는 조선의 솜씨’라는 뜻의 ‘히바카리(火計り) 다완’을 제작했다.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는 정착한 사쓰마번의 이름을 따 사쓰마도기로 불린다. 사쓰마도기는 심당길의 후손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대형 도가지가 정교한 기술과 색감으로 예술성을 인정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과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 이후 많은 조선 도공의 후손들이 일본 성(姓)으로 바꿨으나 심수관 가문은 조선에 뿌리를 둔 ‘청송 심씨’를 421년째 계승하면서 활동해 왔다. 특히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전대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는 습명(襲名) 관습에 따라 본명 대신 심수관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고인인 14대 심수관의 본명은 오사코 게이사치(大迫惠吉)로, 1964년 14대 심수관이 돼 심수관가를 이끌어왔다. 1999년부터는 장남 가즈데루(一輝)씨가 15대 심수관을 맡고 있다.

고인은 사쓰마도기를 통해 한일 문화교류에도 기여했다. 1989년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로 임명됐고 1999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2008년에는 남원 명예시민이 됐다. 또 2004년 가고시마현 이부스키(指宿)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심수관요(窯)를 방문했고, 고인이 직접 사쓰마도기의 유래와 특징을 설명했다.

한국에선 1998년 심당길이 일본에 끌려간 지 400년 되는 해를 기념해 전북 남원에서 ‘심수관 400년 귀향제’가 열렸고, 서울에선 14대 심수관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가 개최됐다. 일본에서도 심수관가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고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발표한 단편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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