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남산 4-5지구 르뽀

대구 중구 '남산4-5지구 철거민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8일 낮 재건축 사업부지 앞에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세입자에 대한 이주비 지급 의무가 없는 재건축사업이 대구지역 단독주택 지역에서도 활발해지면서 조합과 세입자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조합 측은 “법적 의무가 없다”는 반면 세입자들은 “생존권 문제”라며 대립하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 남산4-5지구. 이곳은 입주권에 수억 원의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인기라는 ‘대박’ 단지로 유명하다. 이주비 한푼 없이 내쫓기게 됐다며 세입자들이 투쟁하는, 대박과 생존권이라는 모순이 교차하는 갈등의 공간이기도 하다.

18일 낮 이 지역은 입구부터 을씨년스러웠다. 한쪽에 먼저 들어선 아파트단지와 달리 반대쪽의 식당 미용실 약국 학원 등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스프레이로 크게 휘갈겨 쓴 ‘철거’라는 문구가 난무했다. 골목 곳곳에 나붙은 세입자들의 이주대책 마련 여구 현수막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문을 닫은 약국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세입자들은 “우리가 터무니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인데 외면하고 있다”며 “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위에 존재하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15년 넘게 가요교실을 운영해 왔다는 김성진(57)씨는 “상가세입자 28명은 길게는 40년 가까이 이곳 달동네에서 터를 닦아온 사람들”이라며 “권리금 인테리어비 등을 투자해 장사해 왔는데 어떤 보상도 없이 나가라면 우리 보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다른 세입자는 “여기 안쪽은 아직도 악취가 진동하는 ‘푸세식’ 화장실이 대부분일 정도로 열악한 곳”이라며 “이렇게 기반시설이 형편 없는 곳이 어떻게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이 됐는지 의문”이라고 성토했다.

대구 중구 '남산4-5지구 철거민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8일 낮 재건축 사업부지 앞에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이곳 상가세입자 28명과 일반 주거세입자 4명 등 32명은 지난해 중순 ‘남산 4-5지구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조합 측의 이주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상가와 최소한의 이주비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는 “우린 대부분 동네장사를 해 온 사람들”이라며 “재정착할 때까지 서문시장 화재 대체상가처럼 인근에서 임시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산 4-5지구는 남쪽으로는 보성황실타운과 까치아파트, 북쪽엔 남산휴먼시아 1, 2차, 남산그린타운이 있다. 사업부지는 그 사이에 반도처럼 길쭉하면서도 푹 꺼진 모양을 하고 있다. 2007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2014년 조합설립인가, 2017년 사업승인에 이어 지난해 2월 마지막 관문이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났다. 4만5,836㎡ 부지에 조합원 273세대 등 총 947세대의 아파트와 상가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당초 지난해 말까지 철거를 마치기로 했지만 일부 세입자들의 반발로 대구에선 보기 드문 갈등의 핵으로 부상했다.

세입자들은 또 재건축단지 지정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김씨는 “이곳은 원래 재개발지구였는데 중간에 용적률 0.3%포인트 차이로 재건축단지로 승인이 났다”며 “도시가스도 없는 형편없는 노후불량주택지구가 어떻게 기반시설이 양호한 곳에 나는 재건축단지가 됐는지 파헤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같은 세입자들의 반발과 무관하게 이곳은 ‘인기’단지로 부상했다. 조합원 입주권에 최대 3억원까지 프리미엄이 붙었다. 대기업이 시공사로 참여하고, 도시철도 2, 3호선과 인접한 점 등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따로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합은 이달 말까지 비워주지 않으면 명도소송 판결에 따라 강제집행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내달부터 철거를 시작해 연내에는 분양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할 중구청 관계자도 “현행법상 이주비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며 “세입자 반발로 사업이 지연되면 조합도 손해가 큰 만큼 서로 조금씩 양보해 원만히 합의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역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