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9> 지역주의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 김경진기자

작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여당이 전국에서 압승한 6ㆍ13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지역주의 정치가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이 우세했던 PK(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을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처음 석권했기 때문입니다. 이 선거로 지역주의 정치가 깨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지역주의,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청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한 지역 차별은 무엇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철 지난 담론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라는 지역주의. 밀레니얼이 진솔한 생각과 경험담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사투리는 지역 공용어일 뿐… 특정 이미지화는 기분 나빠 

표정부자=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지역 차별은 사투리야. 사투리를 쓰는 순간 지역이 드러나고 구분이 가능해지니까. 사투리에 관한 기사 취재를 나갔는데 경상도 출신 중엔 사투리 사용을 자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반면 전라도 출신들은 사투리를 자제하려는 경향이 있었어. 사투리를 쓰면 지역 비하 발언을 듣게 되는 경우도 비교적 더 많았고. 한 광주 출신 친구는 다른 호남 출신 친구한테 사투리 쓰지 말라는 말도 들었대.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고교 때 경기도로 전학을 오면서 사투리를 쓰기만 하면 지역 비하발언을 들었던 게 트라우마가 된 거였어.

망아지= 드라마, 예능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촌스럽게 그려져.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 캐릭터가 대표적이지. 반면에 정치인 캐릭터가 사투리를 쓴다 하면 백이면 백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걸로 그려져. 미디어가 지역 편견을 재생산하고 우리 관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표정부자= 인터넷 맘 카페에는 엄마들이 “내 아이는 사투리 안 쓰게 하고 싶다”고 고민 토로하는 게시글도 올라와. 사투리 쓴다고 무시 당하고 상처를 입을 까봐 걱정하는 거지. 현실적인 고민도 있어. “취업에서 불이익 당하지 않게 하려고 사투리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서울로 가서 취직하거나 표준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어릴 때부터 사투리 안 쓰게 하고 싶다는 마음인 거지. 출신 지역에 따른 직접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사투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한 거지. 지역에 따른 구별 짓기는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어.

망아지= “부산 출신 여자애들 사투리 쓰면 귀엽고 매력 있던데, 왜 넌 안 써?”라는 말 들은 적 있어. 근데 막상 사투리 쓰면, 듣는 사람들은 ‘화내는 거 같다’고 무섭대. 고향 묻는 질문에 대답하면 “사투리 안 쓰네? 의외다”가 고정 멘트야. 차별 때문에 사투리를 안 쓰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 나쁘더라고. 이제 서울에 산지 5년이 넘어서 사투리를 안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왜 안 쓰냐는 말을 듣게 되다니 난감하더라.

요다= 대학 동기들 중에 대전 친구들이 많아. 자주 어울리다보니 나도 충청도 사투리를 조금씩 쓰게 됐어. “~한겨”라는 말이 종종 튀어나와. 근데 서울 토박이인 사람들이 놀라면서 “사투리 안 어울린다”, “의외다”라는 식으로 반응하더라. 사투리 쓰는 사람에 대한 전제를 어떻게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

카페인= 사투리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 때문에 나도 사용을 꺼리게 되더라. 나 같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사투리 사용이 더 줄어들까 우려가 돼. 언어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거지. 특정 지역 공용어이기 때문에 편하고, 해당 지역 출신끼리의 유대감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말이야.

 
 ◇고향 사람 반가운 건 당연하지만 지역 편가르기로 흘러선 안 돼 

표정부자= 대부분 어른들은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우리 세대는 출신 지역 묻는 걸 조금 조심스러워 해. 출신지로 사람을 판단하는 부작용이 커서 그래. 예를 들어 대구 출신이라고 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야. “고향 어디냐” 묻고 같은 고향이면 반겨주는 건 괜찮아. 하지만 편 가르기가 되면 문제라고 생각해.

요다= 예전에 일했던 회사의 가장 높은 지위의 상사는 ‘반 호남’ 정서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사람이었어. 사무실 안에서도, 회식 자리에서도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어. 말로만 듣던 반호남주의를 목격하고 충격 받았어. 전라도 출신 사원에게 “네가 한 번 얘기해봐”고 다그치기도 했어.

킥보드= 회사에 취직해 어른들과 얘기하면서 지역주의를 체감한다는 말을 들었어. 취직한 친구들이 “그 회사는 어느 지역 출신이 우세하다”고 말해주기도 하더라. 나는 “어느 대학 출신이 점령했다” 식의 학벌주의는 흔히 접하는데 지역주의는 아직 생소한 것 같아. 회사에서 자식 뻘 되는 부하에게 “부모님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도 한대. 부모님 고향이 왜 궁금할까? 내가 살던 곳도 아니라 어차피 난 잘 모르는 곳인데.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부모님이 어디 출신일지, 혹은 자식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거든.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좀 신기한 것 같아.

표정부자= 대학 캠퍼스에서 향우회 모집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어. 향우회를 모집하는 이유는 어렴풋이 이해가 가. 서울 토박이들은 지방 출신들은 소수자라고 생각해. 수적으로 소수라는 게 아니야. 주류 정체성이 아니란 말이지. 자연스레 동향 사람을 찾고 서로 챙기게 되는 거 같아. 외국 나가서 한국 사람 만나면 금방 친해지듯이 말이야. 그런데 그 친근한 감정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 와서 문제가 되는 거야. 공정한 절차는 무시한 채 동향끼리 서로 끌어주고, 낙하산 앉혀주면서 세력화하잖아. 정 챙겨주고 싶으면 사적으로 만나서 커피나 밥 사주고 둘이 드라이브나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카페인= 외국의 경우 지역성은 내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다더라. 반면에 우리는 식민 지배나 전쟁을 겪으면서 애향심이 발전할 겨를이 없었어. 대신 특정 정치적 목적 때문에 지역성이 동원되고 호명됐어. 수동적으로 형성된 거지. 지역성 얘기 꺼내면 순수한 지역 문화, 지역 정체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지역주의, 지역 갈등이란 키워드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잖아. 따라서 지역주의 자체보다 지역주의가 형성된 배경을 지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치 영역에서 지역주의 여전하지만 우리는 거부해요 

카페인= 정치 영역에선 여전히 ‘특정 지역 챙기기’가 극대화된다고 생각해. 지역의 지지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주위에 동향 사람들끼리 뭉쳐서 활동하잖아. 후보 시절 도와주던 사람들이 ‘공신’이 되어서 요직에 앉게 되는 거지. 이명박 정부의 인사 문제를 비판하는 단어 ‘고ㆍ소ㆍ영’에서 ‘영’은 영남 출신을 뜻하는 것처럼 말이야. 정치인들이 표를 얻고 세력 강화를 위해 지역 갈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치권의 행태가 국민 갈등도 부추긴다고 생각하고.

비빔밥= 결과적으로 국민 갈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활용하는 게 나쁜 거야. 자기들 선에서 끝내면 되는데 결국 국민들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그 영향력을 과연 무시해도 되는 걸까?

킥보드= ‘후보 밀어주기’를 해도 그 목적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 받기도 해. 소수정당 의원이 자신의 힘을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는 있어. 정당이 힘이 없으면 정책도 관심 받지 못하니까. 그런데 자신의 고향 지인에게 한 자리 주는 것은 그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오용하는 것 아닐까?

표정부자= 그렇지만 지역에 따라 특정 정당으로 지지가 쏠리는 현상은 지역주의에 동원된 거라 볼 수도 있지만, 지지자들이 주체적으로 택한 결과일 수 있어.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거나 “특정 정당 찍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무조건 ‘비상식적’이라고 보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 지역에 잘 해주는 사람, 같은 정치관을 가진 사람을 지지하는 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거잖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지역주의를 쉽게 탓하면 갈등만 부추기고 좋을 게 없어.

망아지= 게다가 우리는 거기에 무작정 따르지 않잖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무조건 1번 혹은 2번 찍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지만 내 정치관과는 별개야. 주변 친구들을 봐도 정치성향에 있어서 지역주의를 수용하는 거 같지 않아.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영남ㆍ호남 구도보다는 서울ㆍ비서울 구도에 훨씬 관심이 가. 중앙집중화에 따른 문제가 더 심각하고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니까.

 ◇구직 시작하며 지방과 서울 간 격차 절감 

킥보드= 지역 격차를 체감한 건 취업 준비하면서부터야. 일하고 싶은 곳은 서울이지만 살고 싶은 곳은 고향이었어. 서울의 지옥철도 너무 싫었거든. 고향에는 가족도 있고. 근데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무시할 수 없더라. 언론사만 해도 그래. ‘서울공화국’에서 지역 언론이 다루는 이슈는 한정적이고 주목 받기 쉽지 않아. 게다가 뉴스를 보며 느꼈던 지상파와 지역방송의 화질 차이에 놀랄 수밖에 없었어. 더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지옥철에 탑승할 수밖에 없더라.

요다= 지방에서 취업 준비를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정보 차이 때문이야. 정보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있고,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은 서울이니까. 지방에서는 시간을 들여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열심히 찾아야 된다면, 서울에선 정보를 자연스레 만나게 돼. 인터넷엔 안 올라오는 유용한 정보를 오프라인에서 알게 될 때가 종종 있어. 취업 대비 자료물도 서울에서는 훨씬 구하기 쉬워.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지방대 출신 구직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10명 중 7명은 서울을 취업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대. 서울에 가야 취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방에서 공부할 때는 많은 비용을 들이거나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서울에서 쉽게 얻을 때마다 서울살이에 집착하게 돼.

표정부자= 고향에서 부모님이랑 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와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 왜 이렇게 지역이랑 서울은 차이가 날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건 왜 이렇게 한정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가끔은 ‘속았다’는 생각도 들어. 대학 선택할 때부터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고 떠밀려서 서울에 온 것 같아. 물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녀본 적도 없고, 구직 활동도 해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그렇지만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 좋은 직장을 얻으려면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 가야 한다”는 주변의 말에 서울에 온 것 같아. 그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조언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란 생각이 들어.

비빔밥= 서울 출신으로서 느낀 건, 서울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도 사실 한정되어 있다는 거야. 서울에 모든 인프라가 몰려 있지만, 거기에 서울 시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 정보가 많아서 사람이 많아서 교류가 활발한 것. 거기에 합류할 수 있었다는 게 특권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내 삶의 질을 높였나”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 서울은 정보가 많다 못해 넘쳐 흐르니까 팩트체크를 해야 하고, 옳은 정보를 선별해내기도 더 어려워. 많아서 오히려 문제인 거지.

 ◇내 지역, 내 고향은 남이 아닌 내가 정해요 

킥보드= 여전히 고향에 가면 포근함을 느껴. 휴대폰으로 길을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걸어서 버스 타고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 서울에서 고향 가는 기차를 탈 때부터 마음이 편해져. 도착할 때쯤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집이다’란 생각이 들어. 나는 서울에서 사는 집은 ‘집’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방이라고 하거든. 서울 집에 갈 때는 “내 방 갈래”라고 하지 “집 갈래”라고 하지 않아.

요다= 내가 향수를 느끼는 공간이 내 지역이고, 고향이라 생각해. 서울에 산지 3년 밖에 안 됐지만 서울이 내 고향이라고 생각해. 부모님이 계신 집은 부모님 집이고, 서울에 있는 집이 내 집이야. 난 성남에서 중ㆍ고교를 다녔고,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서울에 살고 있어. 그 중간에 부모님은 여주로 이사 가셨지. 그래서 예전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기도 했어. 서울이 내 고향이라 생각하는데, 남들은 “성남 사람이네” “여주가 고향이네” 규정하는 게 이상해.

표정부자= 고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누구랑 함께 살고, 얼마나 오래 살았고는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아. 내 기준에, 내 가치관에 여기가 맞다면 고향인 거지. 바로 지금 여기가 내 집이고, 고향이라고 느끼는 게 중요한 거야. 훗날 내가 부산에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졌을 때, 그때는 내가 고향을 어디라고 생각하게 될지 궁금해. 그때의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에 따라 고향도 달라지겠지.

카페인= 고향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거기서 한 거라고는 공부밖에 없어. 경험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지. 진짜 성장을 했다고 느낀 시기는 서울에서 산 최근 5년이야. 서울에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거든. 강연을 듣거나 연합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건 고향에서 할 수 없던 일들이야. 그래서 내 지역 정체성을 서울이라 느끼는 거 같아.

요다= 나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여기가 내 고향이다”라고 생각했어. 세속적 욕망이 반영된 생각 같기도 해. 광화문, 시청,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대로에 선 빌딩들을 바라보면서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애착이 느껴지더라. 고향을 내가 지정하면 안 되나?

비빔밥= 고향은 안정감을 주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야. 내게 서울은 늘 삭막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어. 사람도 많고 정보는 넘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곳이야.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았지만 서울에 정이 안 가는 이유이기도 해. 나만의 고향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는 실천해보려고.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정리=홍윤지 인턴기자

참여=권현지, 김의정, 정선아, 정영인, 조희연, 한지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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