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미국 ‘先 실무협상’ 공개 지지… 김정은에 공 넘기며 결단 촉구 
지난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 간 비핵화 담판 전 내실 있는 실무협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 방침을 공개 지지함으로써 ‘톱다운’ 방식을 고집해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다시 공을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6ㆍ12 1주년 친서를 보내 톱다운 대화 의지를 밝힌 김 위원장에게 한미가 실무 합의부터 제대로 다지자는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사실상 ‘보텀업’ 협상 제안을 북측이 받아들일 경우 비핵화 재정의부터 시작하자는 미측에 타협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이어서 김 위원장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을 계기로 북미 협상 방식은 대화 재개를 결정 짓는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한ㆍ스웨덴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토대로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이는 미국이 하노이 회담의 패인을 북측 실무 대표단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주장한 채 추가 비핵화 조치나 비핵화 최종목표 등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 없이 협상에 임한 데서 찾아온 것과 일맥상통한 입장이다.

다만 북측은 아직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일절 화답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최근 미국에 보낸 6ㆍ12 기념 친서에서 정상 간 신뢰를 거듭 강조한 것(본보 6월 15일자 3면)은 북한이 여전히 톱다운 방식을 선호한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친밀감을 나타낸 것은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인 신호긴 하지만, 북측이 즉각 실무협상에 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북측은 톱다운 방식을 유지한 채 대북제재 해제,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끌어내려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측이 실무협상에 선뜻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내부 전략 정비를 마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의 선(先)실무협상 요구는 비핵화 개념 정립, 로드맵 합의 등 비핵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빅딜 구상과 하나의 패키지”라며 “미측 요구에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온 북한이 협상에 다시 나온다면 이 구상을 같이 논의하겠다는 의사 표시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6ㆍ12 1주년을 맞아 북미 대화 분위기가 급격히 조성되고 있는 만큼 일각에선 낙관론도 나온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 방한할 예정인 가운데, 북측이 이를 계기로 미국과 실무접촉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내 강경파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통일전선부 라인 대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대미 협상 복귀 가능성이 커진 것도 북한의 자세 변화를 점칠 만한 신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 제1부상은 명실상부한 북핵 협상 전문가이자 최근 요직에 기용돼 협상 재량권을 발휘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며 “김 위원장의 결단만 있다면 최 제1부상 등 실무협상 대표 교체를 통해 대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전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