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속 청년은 낯설지 않으나 모르는 사람이다. 얼핏 보기에 투구를 쓰고 말 위에 올라탄 옛 전사 같다. 들판으로 달려나가기 직전 그는 잠시 뒤돌아보고 있다. 오월 광주를 새삼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는 청년이 궁금했다.
- 금남로 도청에서 700~800m쯤 떨어진 곳인데, 아침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사이였을 거야. 차를 세우고 허락도 안 받고 사진부터 찍었지. 그러니 기분 나빠서 노려보는 거지.
사진 기자의 설명과 달리, 청년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분노도 억울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 눈빛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랜 세월 침묵으로 꾹꾹 다진 말, 단호한 신념이 되어버린 체념이다.
청년은 지만원씨와 일베 회원들이 ‘광수 1호’로 지목한 사람이다. 그들이 1980년 5월에 광주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는 북한군을 자기들끼리 ‘광수’라고 부른다. ‘기하학’과 ‘픽셀’을 근거로 광주 항쟁 기록 사진 속 사람들에게 광수 1호, 2호… 끝없이 번호를 매긴다. 실제로 화면 속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은 생김새가 상당히 비슷하다. 한국인이 순수 단일 혈통 민족이라는 주장을 믿고 싶어진다.
‘광수 1호’ 말고도 이미 영화의 첫 부분에서 청년을 가리키는 또 다른 호칭이 등장한다. 22일 오후부터 광주 시내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복면 부대.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로 오해받게 만든 강경파.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가 5ㆍ18 청문회에서 증언할 때 언급한 단어들이다.
‘선량한 시민’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한다. ‘내가 너를 해치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해치지 말라’는 메시지는 평화의 결정적 토대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폭력을 휘두르고 총을 쏘기 시작한 상대에게 그런 메시지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선량한 시민’이라는 말은 때리는 대로 맞고 있을 테니 죽이지는 말아달라, 혹은 다른 사람은 죽여도 좋으니 나는 죽이지 말아 달라는 신호나 암시 같은 거 아닐까. 어쩌면 ‘광수’와 ‘선량한 시민’은 서로 밀고 당기는 만유인력 같은 힘으로 견고한 세상 하나를 지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목에 수건을 둘렀네, 목장갑을 끼고.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사진 속 청년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광주 사람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김군이라 불리던, 비행기 떨어뜨리는 총을 다룰 줄 알던, 우리같이 배우지 못한 놈들도 애국할 수 있다고 말하던, 눈앞에서 나 대신 총에 맞아 쓰러지던. 오월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나 각자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심히 덧붙인다. 그때 나는 이뻤다고, 그때 나는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고. 함께 다니는 게 좋았고,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반했고, 민주주의니 전두환이니 그런 건 전혀 몰랐다고. 흩어져 있던 기억들은 모이거나 겹쳐져 한때 세상에 존재했을 청년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간다.
그러나 늘 그렇듯 상처는 기억보다 힘이 세다.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사람들은 불쑥 내뱉는다. 이런 이야기 하고 나면 오늘 저녁에 가서 잠 못 자. 가슴이 아프다. 내가 아픈 만큼 그들이 나를 아파한다냐?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둠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다시 훤한 대낮의 거리로 걸어 나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극장을 빠져나가기 전, 청년의 얼굴을 한 번쯤 돌아보겠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수십 년 동안 스스로 묻던 질문을 떠올리면서.
다시 바라본 포스터 속 청년은 조금 달라 보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이다. 토해내지 못한 무엇인가가 형형한 눈빛 속에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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