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팀을 준우승을 이끈 정정용 감독이 아쉬운 표정으로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다. 우치=연합뉴스

“선수들은 90분 동안 최선을 다해 전략, 전술을 수행했지만 감독인 나의 부족한 부분으로 잘할 수 있었던 걸 못했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성과인 준우승을 이끌고도 정정용(50) 대표팀 감독은 끝까지 자신을 탓했다. 정 감독은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의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2019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1-3으로 패한 뒤 방송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뛰어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면서도 준우승으로 마친 것을 본인 탓으로 돌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왜 그가 선수들에게 존경 받는 지도자인지 묻어났다.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정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듬뿍 나타냈다. 미드필더 고재현(대구)은 “운동장에서 ‘감독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할 때도 있다”고 말했고,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은 “못 잊을 감독님”이라고 각별하게 생각했다.

정 감독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지도자다. 그 동안 선수와 지도자는 수직적인 관계였지만 정 감독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선수들이 자신에게 먼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수들은 그래서 “착한 동네 아저씨 같다”고 했다.

그는 또한 지도자에게 이름값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줬다. 정 감독은 선수 시절 청구중ㆍ고-경일대를 거쳐 1992년 실업 축구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로 참여해 6년 동안 센터백으로 뛰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축구 팬은 드물다. 게다가 1997년 부상이 겹치면서 28세의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이름값이 아닌 확고한 지도철학과 실력으로 정 감독은 지도자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사실 대표팀이나 프로 팀 감독 선임 때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프리미엄을 누리는 점이 없지 않았지만 정 감독이 보여준 무명 감독의 성공담은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줬다.

정 감독은 축구계의 비주류다. 용인 태성중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고, 해외 연수 등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그러고는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활동했다. 고향 팀인 대구FC 수석 코치를 지냈던 2014년을 제외하고 그는 현재까지 12년 동안 14세 이하(U-14) 팀을 시작으로 연령대 대표팀을 지도하며 한국축구의 미래들을 키워왔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근간이 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다듬어졌다.

정 감독은 유ㆍ청소년 선수들에게는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지도 철학을 가졌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에서 선수들에게 나눠줬던 ‘전술 노트’는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이 노트에는 상대 전술과 경기 운영 방식에 따른 우리 팀의 포메이션, 세트피스, 측면에서의 콤비네이션 플레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선수들은 ‘마법의 노트’라고 할 정도로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움직임을 세세히 설명해 놓은 이 노트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이 눈부신 쾌거를 이루는 씨앗이 됐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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