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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대표’에서 ‘불신 아이콘’으로… YG 양현석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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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대표’에서 ‘불신 아이콘’으로… YG 양현석의 추락

입력
2019.06.15 11:11
수정
2019.06.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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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기획사 설립 23년 만에 불명예 퇴진 

 아이콘 멤버 비아이 마약 투약 은폐 의혹 직격탄 

 K팝 세계화 주역 불구 ‘소통 없는’ 행보로 신뢰 잃어 

그림 1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였던 양현석(가운데).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림 1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였던 양현석(가운데). 한국일보 자료사진

 ◇ 문나이트의 소문난 춤꾼이 쏘아 올린 신화 

사내는 1980년대 후반 서울 이태원의 유명 클럽인 문나이트에서 소문난 춤꾼이었다. 강원래, 현진영 등과 ‘최고 춤꾼 3인방’으로 꼽혔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춤에 빠져 회사까지 그만둔 청년은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 멤버로 활동했다.

이 춤꾼에게 당시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서태지가 찾아왔다. 서태지는 ‘양군’이라 불렸던 그와 만난 뒤 마음을 바꿔 3인조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꾸렸다. 1992년 ‘난 알아요’가 실린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세상에 나온 뒤 ‘양군’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박남정과 친구들에서 백댄서로 활동했던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며 아이돌로 성장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 뒤 그는 프로듀서로 변신했다. 자신의 이름 앞 자를 따 1996년 세운 현기획을 1998년 YG엔터테인먼트(YG)로 키우며 사업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누션을 비롯해 빅뱅, 2NE1, 블랙핑크 같은 굵직한 K팝 아이돌 그룹을 배출해 한국 연예 산업을 움직이는 거물이 됐다.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는 한국 연예계에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14일 YG 블로그에 올린 글.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14일 YG 블로그에 올린 글.

 ◇’YG 연예인 마약 뇌관’ 터진 ‘양 대표 리스크’ 

그런 양 대표가 14일 YG를 떠났다. 양 대표가 YG 소속 연예인의 마약 투약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그가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 여파로 보인다. 그룹 빅뱅 멤버였던 승리가 ‘버닝썬 사태’에 연루돼 회사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그룹 아이콘의 멤버 비아이도 ‘마약 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올라 궁지에 몰렸다.

양 대표는 이날 YG의 공식 블로그인 YG 라이프에 글을 올려 “오늘부로 YG의 모든 직책과 모든 업무를 내려놓으려 한다”며 “더 이상 저로 인해 피해가 가는 상황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회사를 차린 지 23년 만의 불명예 퇴진이다.

연예계는 양 대표의 사퇴 발표에 놀란 분위기다. 양 대표가 올 초 버닝썬 사태가 터진 뒤에도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음악 기획을 한 중견 기획사 대표는 “비아이 마약 사건을 계기로 ‘양 대표 리스크’가 결국 터진 데다 YG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재벌 2세나 유명 기업인들이 갑질 논란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회사 경영 피해를 최소화하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양 대표도 같은 방법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2일 ‘YG의 연예계 활동 정지를 요청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엠넷 갤러리’ 회원들이 최근 ‘YG 보이콧’ 성명을 내는 등 소비자들 사이 YG 콘텐츠 불매 운동 움직임이 퍼진 것도 양 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가 기획한 아이돌 그룹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가 기획한 아이돌 그룹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양 대표, YG 최대 주주… 입김 사라지지 않을 것” 

양 대표의 YG 퇴진을 바라보는 눈은 곱지 않다. 양 대표가 버닝썬 사태를 비롯해 YG를 둘러싼 마약 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떠나 다소 무책임하게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양 대표는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다”면서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YG를 둘러싼 온갖 의혹에 자신이 결백하지만, 그를 향한 세상의 잘못된 비판을 견디기 어려워 회사를 떠나는 것처럼 들린다. 한 K팝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버닝썬 사태의 경찰 수사가 나온 뒤 어지러운 회사를 좀 수습한 뒤 물러나는 모양새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양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그가 YG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관계자도 적지 않았다. 25년 넘게 음악 기획 일을 하는 한 기획사 대표는 “양 대표가 YG 최대 주주인데다 YG 내부에 그의 사람이 많아 양 대표의 입김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월 YG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양 대표는 315만 1,188주(16.12%)를 보유하고 있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K팝 산업에서 중요해진 윤리” 

양 대표의 퇴진은 K팝 산업의 지형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버닝썬 사태가 벌어졌을 때 다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며 “구시대적 매니지먼트의 퇴출”이라고 봤다.

양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SM ㆍ1989)를 설립한 이수만 회장과 JYP엔터테인먼트(JYPㆍ1996)를 세운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와 함께 국내 1세대 K팝 기획자로 꼽힌다. 양 대표가 이끄는 YG에선 빅뱅 멤버인 탑, 지드래곤을 비롯해 2NE1 출신 박봄과 작곡가 쿠시 등 소속 연예인과 스태프들의 마약 관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SMㆍJYP에서 마약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 소속 연예인을 찾기 어려운 것과 대조적이다. YG엔 늘 ‘부실 관리’ ‘책임 회피’ 등의 비판이 따랐다. 그때마다 YG는 ‘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벌어진 개인적 일탈’이라며 버텼다.


이런 책임 회피가 반복되자 YG를 향한 불신은 커졌다. 양 대표의 ‘독불장군식 행보’도 불신을 키우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2년 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을 기획하며 9명의 연습생 그룹 데뷔를 약속해 놓고 방송이 끝난 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이 대표적이다. 연습생들이 속한 기획사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양 대표의 퇴진은 K팝 시장에서 윤리와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봤다.

양 대표 퇴진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양현석도 적폐’(@New*****)란 글이 올라왔다. 양 대표의 구시대적 매니지먼트가 청산해야 할 시스템으로 여겨졌다는 뜻이다. YG는 ‘박근혜 정부’ 유착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양민석 YG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양 대표는 양현석의 동생으로, 그도 이날 YG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양 대표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그는 K팝 시장의 규모를 키운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규탁 교수는 “YG는 빅뱅, 2NE1, 블랙핑크 등을 배출해 K팝 한류 시장을 키웠다”며 “자유분방함과 개성을 강조해 K팝의 다양성에 일조했다”고 봤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그룹 아이콘 멤버 비아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그룹 아이콘 멤버 비아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양 대표 퇴진 이후… 

양 대표가 물러나면서 YG의 앞날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 대표가 이수만, 박진영과 달리 소속 가수들의 음악 콘텐츠 제작에 깊숙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당장 가수들의 앨범 출시엔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양 대표 퇴진으로 YG가 원조 브랜드를 잃을 수도 있으나 그의 퇴진으로 손상된 대외 이미지가 회복될 수도 있어 악재로만 보긴 어렵다”라고 내다봤다. YG는 젝스키스 은지원의 솔로 앨범, 이찬혁이 제대한 악동뮤지션의 앨범 발매를 앞둔 상황이었다.

YG 소속 아이돌 그룹 활동엔 비상이 걸렸다. 그룹 아이콘은 마약 사건에 휘말린 비아이의 탈퇴로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따른 YG 소속 그룹 위너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위너 멤버인 이승훈은 비아이의 마약 판매책이자 제보자인 가수 지망생 한서희와 YG 관계자와의 만남을 주선해 마약 수사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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