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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오만은 왜 구축함이 없나... 미국-이란 대립 속 살아남는 법

입력
2019.06.13 15:18
수정
2019.06.13 18:3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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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오만-영국 간 합동군사훈련(Saif Sareea)이 오만 본토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습. 선데이미러 캡처
지난해 10월 오만-영국 간 합동군사훈련(Saif Sareea)이 오만 본토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습. 선데이미러 캡처

중동지역 패권을 둔 미국과 이란 간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며 중립 지대를 구축한 나라가 있다. 아라비아반도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슬람 군주국 오만(Sultanate of Oman)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 신드바드의 고향이자 중동 지역에서도 화려하기로 유명한 모스크를 간직한 이 나라는 국제 정치판에선 ‘오만 밸런싱’으로 일컬어지며 중립 외교를 가장 잘 펼치는 나라로 평가된다. 2013년 시작된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에서 양측 간 메신저로 암약했던 오만은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에도 유수프 빈 알라위 오만 외교장관을 예고 없이 테헤란에 보내 “미국과 이란 모두 군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양국 간 의중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기도 했다. 오만은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수니파 그룹과 이란 주도의 시아파 그룹 간 갈등의 중재자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 사우디 앞에선 이란의 입장을, 이란 앞에선 사우디를 대변하며 위기마다 양측 간 긴장 완화를 도모했다.

반면 굳건한 줄로만 알았던 오만의 외교가 근래 다른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걸프만의 군사 요충지로 꼽히는 자국 항구 2곳에 대한 미국 해군의 접근을 허용하면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한 이란을 자극할 수 있는 도발로 해석되며, 중동의 마지막 중립 지대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누구의 편도 아니다”…강단 있는 중립주의

중동지역 지정학 전문가인 에드윈 트랜은 지난해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오만의 외교 정책은 간단하다. 지역 내 어떤 국가와도 깊은 수준의 정치적 공조를 피하고, 중간자ㆍ중재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오만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다. 이란과 미국 간 대립으로 요동치는 이 지역에서 자국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을 위해선 미국과 이란 또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유지하는 게 오만 스스로 살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중동 갈등 속에서 실제 오만은 철저하게 중간자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상 수니파 국가 모임인 걸프협력이사회(GCC)에 대한 오만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1981년 GCC 창설 이후 오만은 GCC 회원국이면서도 다른 회원국에 대해 반(反)이란 연대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왔다. 중동 전문 매체인 뉴아랍은 “사우디 주도의 GCC가 결국 반이란 성격을 키워가자 오만은 GCC와도 적절한 거리를 둬 외교적 균형감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오만은 2015년 예멘의 후티(자칭 안사룰라) 반군 축출을 내세운 아랍연합군 참여를 거부한 중동 내 유일한 수니파 국가이며, 지난해 11월 이란 견제를 위해 실시된 ‘아랍 방패 1' 훈련에도 ‘불참’을 택했다. 어느 한 편을 들어 다른 한 편의 반발을 사기 보다 양쪽 모두를 자극하지 않는 게 오만의 오랜 외교 전략이었다.

오만이 2016년 호주로부터 도입한 고속수송함(HSSV) '알 나시르'가 항해하고 있는 모습. 오스탈사 홈페이지 캡처
오만이 2016년 호주로부터 도입한 고속수송함(HSSV) '알 나시르'가 항해하고 있는 모습. 오스탈사 홈페이지 캡처

구축함 한 척도 없으면서 수송함만 2척 도입

오만의 중립 노선은 군사 전력 운용에서도 도드라진다. 오만 해군은 2016년 9월 호주 최대 방산업체인 오스탈(Austal)로 부터 고속수송선(HSSV)인 ‘알 나시르(Al Nassir)함’을 인수했다. 같은 해 5월 인수한 ‘알 뭅시르(Al Mubshir)함’을 포함해 2척의 HSSV를 들여온 것이다.

오스탈에 따르면, 알 나시르함은 빠른 병력ㆍ물자 수송과 인도주의 차원의 구조 탐색 및 재난 대응 작전 목적으로 건조됐다. 260명의 무장병력과 395톤의 화물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으며 함미 비행 갑판에 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는 다목적 수송함이다.

2척의 대형 수송함을 도입하는 동안 오만 해군은 전투함 도입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각국 군사력평가 전문 매체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오만 해군의 전투 함정은 경비정 12척과 초계함 5척이 전부다. 웬만한 해양국가 해군이 보유한 구축함 1척도 없는 반면 고속수송함 2척을 동시에 도입한 것은 결국 중동 지역 주변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피한다는 오만의 대외정책이 투영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렇다고 오만이 국방을 소홀히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7년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 나라는 구체적 통계가 잡히지 않은 북한을 제외하면 오만이 12.1%로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비 절대치로 따져도 같은 해 84억1,700만 달러로 폴란드(100억1,000만 달러)와 콜롬비아(97억1,400만 달러)에 이어 26위에 올랐다.

오만은 영국과의 지상ㆍ공중ㆍ해상 합동 군사훈련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양국 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인 사이프 사리아(Saif Sareea)를 1986년과 2001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세 차례 실시했다. 지난해 훈련은 영국군에서만 5,500명과 전차 200대, 6대의 군함, 8대의 타이푼 전투기가 참가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양국 간 군사협력은 1951년 수호통상조약 체결 뒤 오만이 사실상 영국의 보호를 상당 기간 받아온 역사적 배경 탓이 크다. 동시에 영국은 중동정세에 대한 직접적 이해관계가 비교적 덜해 철저한 중립을 지향하는 오만 입장에서도 외교적 부담이 덜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별 GDP 대비 국방비 비율. 그래픽=김대훈 기자
국가별 GDP 대비 국방비 비율. 그래픽=김대훈 기자

미군에 항구 개방…중립 탈피 징조?

반면 군사 협력의 파트너가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핵 합의 이행 문제를 두고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간 힘겹게 지켜온 중립 노선을 명백하게 이탈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제 오만은 지난 3월 군사 요충지로 꼽히는 살랄라항과 두큼항에 대한 미 해군의 접근을 허용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해 중동 지역 국가들을 놀라게 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합법적인 병력 주둔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 처음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협약 체결 뒤 얼마 있지 않아 오만과 미국은 합동 해상훈련까지 실시했다”라며 “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결국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이란 간 대치 구도 속에서 오만이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는 뜻이다.

이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도 남았을 오만의 이 같은 도발은 경제적 이유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오만은 해외 자본을 유치해 두큼 경제특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두큼 특구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투자가 절실한 한편 투자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군사 주둔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도 있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두큼 프로젝트에 107억달러를 쏟아부으며 오만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CFR은 “오만 입장에선 중국과의 협력이 경제적 측면에 국한된다는 점을 미국에 증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미 해군에 자국 주요 항구를 개방한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본다면 미-이란 간 중립을 탈피한 게 아니라, 미중 패권 다툼이라는 또 다른 파워게임 속의 중립 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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