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이런 건 어떨까요] <32> 자살 유가족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회원들이 모임 참석 후 남긴 글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제공

“저 자살 유가족인데요. 어느 분하고 상담을 해야 할까요?” 올 4월 초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은 자살 유가족 이모(64)씨에게 돌아온 답은 “담당자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씨는 2012년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해 우울 증세가 있던 아들이 자살을 한 후 충격을 받아 친지는 물론 친구와의 관계도 끊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놓고 부부는 매일 부부 싸움을 벌였다. 서로를 갉아 먹는 싸움으로 날을 보내던 이씨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딸의 권유로 용기를 내 센터를 찾았지만 헛걸음만 했다.

자살 유가족들은 사별 직후에는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과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 자신의 정신ㆍ육체적 문제를 등한시한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믿지만, 친지는 물론 지인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들어 상황은 악화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유가족은 “처음에는 남아 있는 가족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고인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고 서로 침묵하며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자살 유가족들은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고인의 대한 원망ㆍ분노ㆍ죄책감을 씻어 낼 수 있는 애도 치료를 제대로 받고 싶다고 말한다. 2013년 아들 자살 이후 지역과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가했던 정모(60)씨는 “수년간 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가했지만 제대로 된 애도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향초 만들기나 여행이 아니라 고인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상담과 치료”라고 말했다.

정신과 외래 진료비 혜택 등 자살 유가족을 위한 의료 혜택이 확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가족 이모(68)씨는 “자살 유가족 1명이 치료를 받고 일상에 복귀하면 그 효과는 전체 가족 구성원까지 미칠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워 치료를 포기하는 자살 유가족이 없도록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부에서도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죄의식을 가중시키는 자살 예방 홍보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14년 남편의 자살로 홀로 된 신모(54)씨는 “자살예방 공익광고 등에서 자살자들이 자살에 앞서 말이나 행동으로 통해 ‘자살 신호’를 보내는데 이를 놓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면서 “공익광고의 취지는 좋지만, 자살 유가족들이 자살 신호를 무시하고 놓쳐 결국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죄의식을 들게 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