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오슬로 구상’] 화재ㆍ전염병 등 남북 공동 대응… 대북제재 속 현실적 제안 측면도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내놓은 ‘오슬로 구상’의 핵심은 접경지역 문제를 해결할 남북 접경위원회 구성이다. 다만 2017년 7월 신 베를린 선언 때와 달리 당장 북측에 기구 구성을 제안하진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정치 협상이나 정쟁의 대상만이 아닌 국민 개개인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로 끌어내리겠다는 뜻도 읽힌다.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 가능한 동력을 키워가겠다는 의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슬로 대학에서 열린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에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의 핵심으로 국민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산불ㆍ가축전염병, 어민들의 조업권 문제 등 접경지역 문제를 언급하며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이것을 ‘국민을 위한 평화’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신 베를린 선언을 넘어서는 ‘오슬로 구상’에 국민을 앞세운 데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 가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접경지역 문제를 꺼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북간 갈등 탓에 중국 어선의 침범으로 수산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분단 체제에 길들여진 생각부터 깨야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 대화를 개성공단ㆍ금광산 관광 재개 여부라는 도식적 틀에 가두지 않아야 미세먼지를 등 협력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문제로까지 남북간 협력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이번 기조 연설은 신 베를린 선언에 이어 우리만의 평화의 개념을 완성한 하나의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정치권만의 평화ㆍ통일론은 색깔론을 넘어설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오랜 문제의식 또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분단이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심지어 사고까지 제약해 왔다”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평화가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때,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화가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모일 때, 국민들 사이에 이념과 사상으로 나뉜 마음의 분단도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7월 ‘신 베를린 선언’을 통해 제시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일정부분 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다음 단계로의 진전을 준비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신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측에 요구했던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 대화 재개, 적대행위 중지 등이 지켜지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문 대통령은 10일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이미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비핵화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국민적 지지가 낮아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도 없지 않아 보인다. 국제 사회의 대북제제 유지 기조를 감안한 현실적 제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또 ‘적극적 평화’를 거듭 강조하면서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비전을 다시 꺼내 들기도 했다. 북미 정상 간의 톱다운 방식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켜나가면서도 다자가 참여하는 안전판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평화란 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이 우리 모두에게 새겨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오슬로=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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