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의회가 중국으로 범죄인 송환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심의하려던 12일 이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들끓는 홍콩 민심이 정치적 자유에 재갈을 채우려는 법안 처리를 일단 막았다. 지난 9일에 이어 시민들이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가 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홍콩 의회는 12일 강행하려던 범죄인 인도 법안 심의를 연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20일 법안 표결을 목표로 절차를 계속 진행할 방침이어서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남아 있다.

홍콩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전 11시로 예정된 2차 심의를 연기했다”며 “입법회(우리의 국회) 사무국이 추후 심의 개시 시간을 의원들에게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을 주축으로 직장인과 학생, 기업인들이 대거 반대 행렬에 동참한 탓이다. 전날부터 모여든 시민들이 밤새 수만 명으로 불어나면서 유혈 사태에 큰 부담을 느낀 홍콩 정부가 두 손을 들었다.

시위대는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법안 반대 구호를 외쳤다. 400여개 기업과 상점은 자발적으로 문을 닫고 시위대에 힘을 실었다. 교사 노조도 총파업에 동참하며 조합원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대학생들은 동맹 휴업으로 호응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고등학생들의 시위 합류를 용인했다. 50여개 사회복지단체, 100여개의 예술문화 단체들도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면서 차량 운행은 중단됐고, 사실상 의원들이 법안 심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됐다. 이들은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2014년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50만명이 시위에 참여해 79일간 홍콩 도심을 점거한 ‘우산 혁명’ 이래 이처럼 거리를 시위대가 장악한 건 5년 만이다.

이에 정부는 5,0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시위대에 맞섰다. 일부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는가 하면, 고무탄이 발사됐다고 시위대들이 주장했다. 충돌이 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실탄 장전을 허용했다는 관측도 나돌았다. 홍콩 명보는 “경찰의 진압작전 명칭이 물결 타기(tide rider)”라고 전했다. 나이와 직업을 망라해 시위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위대 규모가 눈에 띄게 불어나면서 정부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앞서 9일 역대 최대 규모인 103만명의 반대 시위를 접한 터라, 시민들을 자극하면 위험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와중에 캐리 람 행정장관이 24시간 안에 살해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으면서 경찰은 용의자 색출에 나섰다.

이처럼 시민들이 세를 과시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막상 표결이 진행될 경우 현실적으로 저지하기는 역부족이다. 70개 의석 가운데 50여석을 친중국 성향 의원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은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으로 범죄인을 송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넘기는 데 악용할 수 있다며 법안에 강력 반대하는 반면, 중국은 “홍콩의 정당한 입법권 행사”라면서 조속한 통과를 종용하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