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라토. 영화 파리넬리 캡처

오노레 드 발자크의 중편소설 ‘사라진느’(문학과지성사, 1997)는 카스트라토(거세 가수)가 등장하는 드문 소설이자 동성애혐오 범죄가 나오는 소설이기도 하다. 프랑스 태생의 조각가 사라진느는 스물두 살 때인 1758년, 이탈리아 로마로 미술 공부를 하러 간다. 그는 그곳에서 미모와 미성을 가진 잠비넬라라는 여가수에게 반하게 되는데, 잠비넬라에게는 치코냐라 추기경이라는 막강한 후원자가 이미 있다. 잠비넬라에게 구애 공세를 펼치던 사라진느는 어느 날 잠비넬라가 여자가 아닌 ‘거세된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라진느는 ‘가짜 여성’에게 농락당한 것에 분개하여 잠비넬라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납치하여 죽이려고 한다. 그 순간 치코냐라 추기경이 보낸 자객들이 사라진느를 죽인다.

‘사라진느’는 롤랑 바르트가 이 작품을 텍스트로 ‘S/Z’(연암서가, 2015)이라는 비평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바르트는 사라진느(Sarrasine)와 잠비넬라(Zambinella)의 첫 글자인 S와 Z을 거울상으로 맞세워 놓은 ‘S/Z’을 통해 ‘공(空)’ 또는 ‘무(無)’를 ‘사라진느’의 주제로 부각시켰다. 물론 이런 요약은 ‘S/Z’에 대한 허다한 요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조심하십시오, 프랑스 양반.” 사라진느는 불운한 최후를 당하기 전에 주위로부터 잠비넬라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잠비넬라로부터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직접 전해 들었다. “가까이 오면 이 칼을 당신 가슴에 찌를 수밖에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 콩깍지가 덮인 사라진느는 더욱 잠비넬라에게 반하게 된다. 다급해진 잠비넬라가 또 다시 경고한다. “전 저주받은 여자입니다. 당신은 절 사랑하지 마세요. 제가 한마디만 하면, 당신은 절 혐오하며 물리칠 겁니다.”

이처럼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사라진느는 이탈리아가 카스트라토의 본거지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잠비넬라가 “만일 제가 여자가 아니라면?”이라고 결정적인 단서를 주었지만 사라진느는 오히려 “예술가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하며 코웃음 쳤다. 공 혹은 무를 보지 못하는 예술가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내어 놓게 될 것이다. 이제 질문을 던질 차례다. ‘카스트라토의 정체를 간파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가?’

기호학자였던 바르트는 인간의 약점으로 기호에 맹목인 점을 꼽았다. 예컨대 사라진느는 남성이 여성의 여러 기호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해온 ‘여자=연약함’이라는 기호를 맹신했다. 때문에 사라진느는 교외에서 잠비넬라가 뱀을 보고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그것이야말로 잠비넬라의 여성성을 학인해주는 증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래도 당신은 여자가 아니라고 감히 주장하겠소?” 하지만 뱀을 보고 창백해지는 남자도 있으며, 연약함이 여자임을 보증하는 기호일 수도 없다. ‘여성=연약함’이라는 기호에 구속된 사라진느는 그것을 의심할 줄 모른다. 또 사라진느는 잠비넬라를 보고 “여자만이 이렇게 둥글고 부드러운 팔과 우아한 곡선을 가질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잠비넬라라는 카스트라토에 의해 ‘여자=둥글고 부드럽고 우아함’이라는 기호는 남성에게까지 확장되었다. 그레이엄 앨런은 ‘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앨피, 2006)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라진느는 잘못된 논리 혹은 독사적(endoxal) 사유의 희생자이다. ‘독사(the doxa)’란 상식, 여론, 상투어, 지배적 이데올로기 혹은 기표의 배후에 존재하는 안정되고 단일한 기의를 말한다.”

남성성은 남자가 여자를 취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고해진다. 하므로 까딱했으면 자신의 남성성을 ‘가짜 여성’에게 탈취당할 뻔 했던 것에서 사라진느는 분노를 느꼈다. 또 잠비넬라에게 반했던 사실은 어쩌면 내 속에 동성애 본성이 있을 것이라는 자책마저 부른다. 이 두 가지가 사라진느로 하여금 잠비넬라를 살해하도록 이끌며, 저 두 가지 사항이야말로 동성애혐오자들이 동성애혐오 범죄를 행하게 되는 무의식적 구조다. 결말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사라진느의 죽음은 동성애 성향을 가졌던 발자크의 자기 처벌을 상징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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