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여성운동 동료… “희호 언니가 쏙 빠져 결국 결혼, 둘 다 인기 많았던 멋쟁이” 
이희호 여사와 가까웠던 김정례 전 보건사회 장관(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고문)이 11일 서울 종로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희호 언니가 김대중씨하고 결혼한다고 말해 놀라서 말렸어요. 그런데 둘은 기가 막힌 애정을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한 내외였죠.”

엘리트 여성운동가와 장래가 불투명한 야당 정치신인의 만남….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인연을 맺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김정례(91)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람의 금슬을 떠올리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두 사람이 부부로서, 정치적 동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안내한 주인공이다.

김 전 장관은 11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사회활동 면에서 참 잘 통했다. 희호 언니의 성품이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1951년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한 김 전 장관은 이 여사와 함께 ‘1세대 여성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여성운동의 공을 인정받은 뒤 11ㆍ12대 국회의원이 됐고, 1982년 보건사회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의 만남은 ‘청년사업가’ 출신인 김 전 대통령에게 여성계와 중앙정치 인사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었던 김 전 장관 덕분에 이뤄졌다. 김 전 장관은 “전남 목포에서 활동하던 김대중씨를 중앙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며 “그 때 많은 여성운동가들을 소개해 줬고, 희호 언니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1951년 1ㆍ4 후퇴 때 해운업을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 김대중’이 인천에 물건을 내리고 돌아가려 할 때, 김 전 장관이 피난민을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고, 이에 감동한 김 전 장관은 ‘언제 나를 만나러 부산에 오면 밥 한 번 사겠다’고 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을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갔고, 김 전 장관은 식사 자리에 이 여사를 데리고 나갔다. 이런 자리가 몇 번 이뤄졌고, 세 사람은 사회문제를 토론하는 공부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와 가까웠던 김정례 전 보건사회 장관(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고문)이 11일 서울 종로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특별한 연인으로 발전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전 부인이 작고한 뒤 1959년부터다. 이들과 가까웠던 김 전 장관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몰래 사랑을 키웠다. 김 전 장관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언니가 김대중한테 쏙 빠졌다.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다”며 “결혼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놀래서 말리기도 했지만, 언니가 올드미스였고 둘이 좋다고 하니 잘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과 결혼 의사를 주변에 밝히자 모두들 말렸다고 한다. 이 여사는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엘리트 여성이던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장래가 불확실한 야당 신인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식이 둘이나 있는 부담스런 처지였다. 김 전 장관은 “솔직히 여자 입장에선 자식이 있고 한 번 결혼했던 김대중씨가 달갑진 않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달필가이자 따르는 사람이 많던 이 여사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웠다”며 “언니는 참 수더분하고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줘 많은 이가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또 “글도 참 잘 썼는데, 언니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 모두 ‘잘 꾸미고 다니는 멋쟁이’라고 떠올렸다. “언니는 늘 멋스러운 양장을 입고 다녔고, 주변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고 설명할 땐 김 전 장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선 “처음 봤을 때 멋들어진 가죽 자켓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참 남아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장관은 민주화투쟁 시기 김 전 대통령이 수감 생활을 하거나 미국으로 망명을 갔을 때 이 여사의 버팀목이 돼 주었다. 그는 “언니가 아들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 왔다”며 “우리 아들은 홍걸(김 전 대통령 삼남)이한테 늘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씨가 감옥에 있을 때 언니와 면회를 자주 다녔다”며 “언니와 만나면 남편 석방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이희호 여사와 가까웠던 김정례 전 보건사회 장관(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고문)이 11일 서울 종로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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