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워싱턴 출장을 다녀왔다. 만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은 ‘트럼프’가 아니라 ‘강효상’이었다. 자유한국당 의원인 그는 대구 대건고 후배인 주미 한국대사관 외교관 K씨에게 들은 3급 비밀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K씨는 파면됐다. 반면 강 의원은 건재하다. K씨의 운명을 가른 건 ‘선배’라는 마법의 단어였다.

□ 강 의원과 K씨가 선후배임을 ‘제대로’ 확인한 건 올해 초였다. 국회 대표단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강 의원이 소집한 동문 모임에서였다고 한다. 늦깎이 외교관인 K씨는 워싱턴에서 평판이 좋았다. 실력 있고 진중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 그가 “나만 알고 있을 테니 정보를 알려달라”는 강 의원의 말을 덜컥 믿어버렸다니, 한국의 선배란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다. ‘네이버 지식인’에 ‘선배’를 검색하면 별의별 질문이 나온다. “저 선배한테 찍힌 걸까요?” “‘선배’와 ‘선배님’ 중에 뭐가 적당할까요?” 선배 때문에 속앓이 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방증이다.

□ 강 의원의 세계에선 선후배의 질서가 유난히 빡빡한 것 같다. “내가 대학 선배인데,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퇴하라.” 그가 2017년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 김용수 당시 과학기술정통부 차관의 면전에 대고 한 말이다. 차관을 공개적으로 ‘못 배운 후배’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역시 선배의 힘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선배를 ‘①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 따위가 많거나 앞선 사람 ② 자신의 출신 학교를 먼저 입학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대체로 ‘일찍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찍 태어나기 위해, 나를 비롯한 선배들은 무엇을 했을까.

□ 선배라는 말은 권력이 있는 곳일수록 위력을 떨친다. 이를테면 정치권에서다. 여의도에는 국회 출입기자가 연장자인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언론이 ‘의원님’에게 쫄지 말고 취재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기자가 반(半) 정치인 노릇 하던 시절에 생긴 관행이기도 하다. 모두가 그 관행에 올라탄 것은 아니다.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내가 왜 당신 선배요?”라고 한 기자를 면박 준 일이 회자된 적이 있다. 당시 유시민 의원은 ‘지독하다’는 평을 들었다. 지독한 건 정말로 그때의 유시민일까.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