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김정일 조문 때 김정은 만나… 北, DJ 서거 때 조문단 보내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차 방북한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긴 이희호 여사의 장례식에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조문단 파견을 통해 남북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여사의 별세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어색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남북이 대화를 재개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조심스레 나온다.

통일부는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11일 오전 이 여사의 부음을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오후까지 이 여사의 조문 계획이나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전하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도 조전(弔電)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 시점에서 조문단 방남 가능성을 예단해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북한이 조문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조문단을 파견하는 형태로 예를 갖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이 여사는 남편의 뒤를 이어 북한과 꾸준히 교류하며 남북 간 가교로서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12월엔 김정일 위원장 조문 차 평양을 찾아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애도의 뜻을 전한 바 있다.

북측이 조문단을 파견하면, 정부는 이를 계기로 당국 간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전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조문단 파견을 운신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계산법을 바꾸라’는 요구에도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만큼, 조문단 파견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뒤 다시 남한의 중재ㆍ촉진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입장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남한과의 교류가 멋쩍었던 김정은 위원장이 조문을 명분 삼아 대화 의지를 비칠 수 있다”고 봤다.

2009년 8월 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차 방남한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남북 간 ‘조문 정치’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시에도 관찰됐다. 북한은 당시 김기남 당 중앙위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6명으로 구성된 조문단을 파견했고, 이명박 대통령 접견을 자청해 ‘6ㆍ15공동선언과 10ㆍ4정상선언이 잘 실천된다면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전했다.

일각에선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최고위급 인사 방남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 여사가 영부인 신분인 점 등을 고려할 때 김 전 대통령 서거 때보다는 낮은 급으로 방남단을 구성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희호 여사가 전직 대통령은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중인 만큼, 북한은 통전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0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별세 당시 북한은 송호경 통전부 부부장이 단장인 조문단을 보냈다.

조전만 보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눈치를 본다’,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군사 훈련을 강행한다’며 전방위적으로 대남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선뜻 조문단 파견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제2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던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만 유족에게 전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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