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들이 동ㆍ식물, 생물 자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영국 전함 프로비던스 호의 사령관 브로턴. 그가 1804년 펴낸 책 ‘북태평양 탐험항해기’의 끝에는 철쭉, 소나무 등 조선의 식물 학명 26개를 부록으로 담겨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생물종 목록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지난 연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기록된 생물 종수가 5만종을 돌파했습니다. 지구에 서식하는 생물종 수가 166만종(2017 국가생물다양성 통계자료집) 정도라고 하니, 지구상 생물의 약 4%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5만종의 생물은 처음에 어떻게, 무엇부터 알려지게 됐을까요. 물론 1735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가 제안한 학명 체계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 생물학 역사상 최초 기록에 얽힌 서양 채집가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을 방문한 이양선, 한반도의 생물을 채집하다 
1850년 한국 최초로 기록된 조류인 팔색조.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1797년 10월 부산 용당포(남구 용당동)에 낯선 차림의 서양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육지에 잠깐 들린 것이지요. 당시 조선 관리들은 친절하게 물과 땔감을 제공해 주고 측량을 허락했는데, 이 일은 영국 전함 프로비던스 호의 사령관 브로턴이 1804년 ‘북태평양 탐험항해기’를 출판하면서 알려지게 됩니다. 이 책의 끝에 철쭉, 소나무 등 조선의 식물 학명 26개를 부록으로 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생물종 목록입니다.

우리나라 팔색조는 1850년 독일 의사 겸 동물학자 지볼트의 ‘일본의 동물상’이라는 책에 그림과 함께 코리아(Corea)라는 지명으로 처음 알려진 새입니다. 그러나 표본의 입수 경위는 나와 있지 않은데, 사실 오래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세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일본에 오래 머물렀던 지볼트가 일본인을 고용해 조선의 표본까지 수집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배(이양선)의 방문이 잦아지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아편전쟁에서 청나라에 승리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세력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군사적 혹은 과학적 목적을 지닌 배들로 영국의 사마랑 호, 러시아의 팔라다 호, 이탈리아의 베토르 피사니 호, 미국의 컨스티튜션 호 등, 이외에도 여러 외국 선박의 방문기록이 있습니다. 이 때 배에 탄 해군, 군의관들이 동식물을 수집해가곤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845년 사마랑 호의 함장 벨처와 군의관 애덤스는 제주도와 남서 해안을 한 달간 탐사하며 많은 동물을 채집했는데, 이 표본을 재료로 동양달팽이, 제주멋쟁이딱정벌레 등 최초의 한국산 신종이 발표됩니다.

벨처 일행이 제주도 서귀포에 들렸을 때의 일화입니다. 목재가 필요해 마을의 큰 나무를 쓰러뜨리려 할 때, 한 노인이 다가와 당장 멈추라고 소리칩니다. 이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고 개인의 재산임을 주장한 것이지요. 벨처는 노인을 달래기 위해 달콤한 와인을 선물로 줘야 했다고 합니다.

1943년 영국 군함 사마랑호의 이름이 붙인 동양달팽이(Nesiohelix samarange).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호텔 지배인에서 왕실의사까지, 아마추어 박물학자의 채집활동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며 서양의 접근에 불안했던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맞서다 1876년에서야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세계를 누빈 사업가,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등 다양한 서양인들이 조선을 찾게 됩니다. 그 중에는 아마추어 내추럴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즉 본업 외의 여가생활로 생물을 채집한 이들입니다.

프랑스 가톨릭 신부 타케. 애초에 선교사로 한국을 찾았지만 식물 자원을 많이 채집해 서방에 보내 우리나라 식물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한국 최초의 서양 무역회사 이화양행의 책임자 보우링은 취미로 아시아의 딱정벌레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귀국하면서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수집품을 기증했는데, 그 중 한국산 다우리아사슴벌레가 처음 알려졌습니다. 또한 독일계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볼테르는 제물포(인천)에서 파충류를 채집해 고향인 함부르크로 보냈는데, 이것이 줄장지뱀으로 신종 발표됩니다. 러시아로 식물을 보낸 호텔 지배인 손탁과 영국으로 동물을 가져간 대한제국 왕실의사 스칼렛은 여성 내추럴리스트였습니다. 스칼렛 여사는 환자를 돌보는 중간 중간 자전거를 타고 한국의 자연을 탐사했는데, 카메라와 함께 총을 들고 매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의 가톨릭 신부인 타케는 처음에 선교를 위해 내한했지만, 식물자원을 많이 채집해 서방에 보냄으로써 우리나라 식물을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했고 제주도에 밀감 농사를 처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생물종을 찾아 한반도를 찾은 전문 채집자와 연구자들 

조용한 동방의 나라 생물이 차츰 알려지면서 전문 채집자와 연구자들이 직접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각 나라 박물관 또는 왕실의 후원으로 표본 수집과 연구 성과를 목적으로 한국에 온 것이지요.

버나도와 주이는 미국 공사관에 근무하면서 미술품, 공예품 등 한국의 민속학적 자료와 함께 조류, 어류, 양서파충류 등 많은 동물을 채집해 갔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외국인들의 방문 목적과 정체를 잘 알지 못했는데, 사실 버나도는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파견한 정보장교(해군소위)였으며 주이는 훈련된 원격 수집가였습니다.

미국 동물학자 앤더슨은 제주도와 남부 지방을 탐사할 때 런던동물학회 주선으로 조수 모집 공고에 뽑힌 일본인 고등학생 이치카와(市河三喜)와 함께 다녔습니다. 앤더슨은 “이미 조선에는 산림벌채와 자원고갈로 채집할 것이 별로 없다”는 하소연을 남깁니다. 제주도에서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채집기간 내내 날씨도 좋지 않았던 앤더슨은 한 농민과 이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앤더슨: 여기는 비가 자주 오나요?

농민: 아니요.

앤더슨: 이 비는 언제까지 올 것 같나요?

농민: 당신이 이 섬을 떠날 때까지요.

농민은 나쁜 날씨가 외지인의 방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908년 미국 동물학자 앤더슨의 이름을 붙인 퉁가리(Liobagrus andersoni).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일제 강점기의 서양인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는 임업시험장, 농사시험장, 수산시험장 등 한반도에서 생물자원 활용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서양 연구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서양 채집가로 함경북도 주을에 살던 얀콥스키 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집안은 19세기 말 아버지 시절에 반 러시아 독립운동으로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았다가 사면된 후 연해주에 정착해 농장을 경영했는데, 폴란드 귀족 가문의 전통대로 자연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동물사냥과 곤충채집을 해 유럽에 보내곤 했습니다.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아들인 얀콥스키 형제(알렉산더, 조지)는 북한으로 피난해 외국인 휴양지인 ‘노비나 마을’을 운영하며 동물수집상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한국 1세대 곤충학자인 조복성 교수는 얀콥스키와 만난 일화를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얀콥스키의 나비 채집 방법을 보면 우선 식구들이 모두 상자를 하나씩 갖고 나와서는 주로 풀잎이나 나무들을 찾아 다닌다. 즉 그들은 나비를 포충망에 의해서 잡는 것이 아니라, 풀잎에 붙어 있거나 혹은 나무에 붙어있는 나비의 번데기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구석구석을 찾아 잡아온 번데기들을 얀콥스키가 다시 구별하여 배치한 다음, 며칠 후에는 번데기들이 차차 날개가 돋기 시작한다. 얼마 후 이미 성숙한 나비들이 그들의 날개를 활짝 펴려 할 때 밑에서 마취제 가스를 집어넣는다. 그러면 나비의 고운 날개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완전한 채집이 되어 그의 표본실에 비치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잡은 나비에게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얀콥스키는 북한에 머물며 호랑이를 비롯한 많은 맹수를 사냥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로 반출한 중간상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야생동물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 것입니다.

1913년 일제강점기 수원 서호에서 기록된 후 멸종한 서호납줄갱이(Rhodeus hondae).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계속된 채집활동 

채집가들의 활동을 조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중의 서양인들의 채집 기록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이들은 참전용사, 군의관, 종군기자 혹은 포로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생물을 채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소속 극동사령부 야외생물국장으로 수원에서 근무한 오스틴은 새를 관찰, 채집하고 창경궁의 소장 표본까지 조사해 이전의 한국 조류 연구를 총정리한 ‘한국의 조류’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영국의 호워드는 1945년까지 인천에서 2년 반, 함흥에서 6개월을 일본군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35종의 나비와 66종의 나방을 채집해 나중에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유명 언론인 로렌스는 신문기자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보도하는 한편, 미군의 동물채집을 돕기도 했습니다.

1973년 미국 어류학자 스프링거의 이름을 붙인 왜매치(Abbottina springeri).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젊은 대학생 신분으로 한국전에서 군복무 중 생물을 채집해 논문을 쓰거나 전문가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 고유종 왜매치를 처음 채집한 스프링거는 후방인 경남 김해에서 타자수로 근무했는데, 귀국 후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어류학자가 됩니다. 미 해병대원으로 참전했던 딕슨은 문산천에서 발견한 양서파충류 채집 논문을 발표하고, 나중에 텍사스에이앤엠대학의 야생동물학과 교수가 됩니다. 또한 한국에서 2년간 의무대 복무 중 유행성 출혈열 역학조사를 위해 설치류와 곤충을 채집했던 바이어스는 파리목을 전공해 미국 캔자스대학의 곤충학과 교수가 됩니다.

 
 ◇아마추어 사진가가 새로운 생물종 발견해 제보하기도 

남북이 외세와 이념으로 갈라진 후, 북한에서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등 유럽 동구권 서양 연구자들의 생물 탐사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신지식을 흡수한 후학들의 약진으로 생물과학 분야가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앞서 우리생물의 연대기 중 일부를 서양 채집가의 입장에서 소개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물종은 저마다 다른 사연들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활동으로 우리나라 초창기 생물이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표본은 전부 해외 유명 자연사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어 후학들이 연구하려면 직접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과 과거 우리의 생물주권을 지키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2005년 미국 과학교사 카슨의 이름을 붙인 이끼도롱뇽(Karsenia koreana).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통 생물의 기록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기가 큰 것부터 작고 구별이 어려운 종류로 심화되어 갑니다. 논문이 나오면서 종명을 확정하는데 채집자와 연구자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최근 이끼도롱뇽의 경우 2003년 대전국제학교의 미국인 과학교사 카슨이 장태산에서 학생들과 바위틈의 생물을 관찰하던 중 처음 발견했으나 논문은 2005년 한국 과학자 민미숙 교수가 주도해 발표했습니다. 논문을 완성하는 연구자의 노력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최초의 안목 있는 관찰자(채집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자연에 대한 저변의 관심이 중요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취미로 생물사진을 찍는 분들이 새로운 종을 발견하여 제보하거나 연구자와 함께 발표하는 사례도 볼 수 있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지고 풍부해진 정보의 교류로 더욱 빨리, 더욱 자세히,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나라 생물의 기록 역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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