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DJ가 1972년부터 87년까지 망명과 가택연금 등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룬 한길을 함께 걸어온 정치적 동반자였다. 또 미국 유학을 다녀온 1세대 여성운동가로 남녀차별 철폐 등 가족법 개정 운동을 주도하고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한국현대사의 거목이었다. 그를 단순히 거물 정치인의 아내, 영부인으로만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이 여사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도 앞장섰다. 2000년 6ㆍ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DJ와 동행했고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는 조문단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도 ‘평화통일’이었다. 이 여사는 유언에서 “하늘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면서 “동교동 사저를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을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당부했다.
북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애도했다. 정치권도 그간의 반목을 접고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민주화 거목이 스러졌다”며 일제히 애도했다. 정식 조문이 시작되기 전인 11일 점심께 빈소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을 위해 남기셨던 유지들을 저희가 잘 받들도록 하겠다”고 했고, 바른미래당도 “민주화의 큰 나무로 무성히 잎을 피워 낸 민주화 운동가였다”고 논평했다.
고인은 영욕의 삶을 마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97년 생애가 현실 정치에 주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정책을 놓고 싸우더라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정파를 떠나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화합’을 강조한 고인의 유지를 새긴다면 조속히 국회 문을 열어 민생 살리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인의 유지 계승을 다짐한 여야 정치권이 현실 정치에서도 국민을 위하는 협치의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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