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속 작은 정원 노르웨이 베르겐 
플뢰위엔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뾰족 지붕 건물이 성냥갑처럼 어깨를 맞대고 있는 베르겐 시내 모습이 동화 나라처럼 보인다. 카메라의 미니어처 효과를 이용해 찍었다. 베르겐=최흥수 기자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의 대자연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설산과 초록 들판, 호수처럼 잔잔한 피오르가 빚어내는 풍광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다 그 감동을 제대로 담아낼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일찌감치 깨우친 것 같다. 아무리 예쁘게 집을 짓고 마당을 가꾸고 길을 내도 결국 대자연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은 위대한 조율자이고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이 허락한 만큼의 땅을 가꾸는 집사에 불과하다. 순응하고 조화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베르겐을 걷다, 정원을 거닐다 

피오르 여행의 출발지이자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은 그런 도시의 전형이다.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일곱 개의 산 중 하나인 플뢰위엔 산 전망대에 오르면 인구 25만의 도시 베르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항구 근처 하부 승강장에서 푸니쿨라라고 불리는 강삭철도를 타면 2~3분 만에 산정에 닿는다.

플뢰위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베르겐 시내와 항구.
플뢰위엔 산 전망대에서 본 베르겐 시내 풍경. 미니어처 효과를 이용해 찍었다.
플뢰위엔 산에 오르면 베르겐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조성한 도시 같다.
붉은 계통의 지붕 색깔과 뾰족 지붕이 통일감을 주는 베르겐 주택가 풍경.

이곳에선 자연보다 도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통 3~4층, 기껏해야 10층을 넘지 않는 건물이 성냥갑처럼 오밀조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붉은 계열의 뾰족한 지붕 색깔이 산뜻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도시 전체가 군더더기 없는 정원 같고 잘 꾸민 공원 같다. 이따금 주택 사이로 난 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차량도 그림책 속의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천혜의 자연을 누리는 이곳 사람들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도시 풍경이 그립고, 문명의 향기에 목말랐을 것이다. 베르겐의 건물과 거리 전체가 어쩌면 이곳에서 색다른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만든 동화 나라일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플뢰위엔 산 숲 속에서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놀이를 즐기고 있다.
플뢰위엔 산에서 도심으로 내려가는 산책로. 도심 숲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내려올 때는 푸니쿨라 대신 3km 산책로를 걸었다. 산정에서 도심까지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연결한 길은 쉬엄쉬엄 걸어도 40분이면 족하다.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등 아름드리 침엽수가 빼곡하게 하늘로 뻗었고 간간이 제 높이와 덩치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는 모습도 보인다. 초록 이끼를 잔뜩 머금은 어둑한 숲 바닥엔 별처럼 노랗고 하얀 꽃이 뒤덮였다. 안전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선생님과 대자연 속에서 숲 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이고, 걸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도 제법 많다. 공기는 도심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디달다. 자연을 개발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브리겐 역사지구는 한자동맹의 중심이었다. 하역장과 사무실로 사용했던 중세 목조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브리겐 역사지구의 오래된 목조 건물은 언뜻 봐도 살짝 기울어져 있어 실제보다 더 오래된 느낌을 준다.
스러질 것 같은 건물 내부는 여전히 상가나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심을 걸어도 마찬가지다. 1070년 바이킹 왕 울라프가 건설한 베르겐은 12~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북해의 청어와 대구잡이 항구로 성장해 13세기에는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로 자리잡았고 항구 주변은 무역상과 어부로 늘 북적거렸다.

당시의 흔적이 남은 브리겐 역사지구의 오래된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1702년 대화재로 소실됐다 복원했다. 육중한 목조 건물의 1층은 하역장으로, 2ㆍ3층은 숙소나 사무실로 쓰였다. 산뜻하게 페인트칠을 한 외관과 달리 골목으로 들어서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건물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언뜻 보기에도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아 비뚤비뚤한데도 스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살짝 기울어진 골목 안 단층 주택에선 빗자루를 탄 마녀나 아리따운 요정이 튀어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아귀가 맞지 않은 출입문과 유리창을 그대로 둔 채 영업 중인 기념품 상점과 식당도 흥미롭다.

알록달록 원색으로 외관을 치장한 브리겐 목조 건물 앞 광장의 노천 카페는 늘 맥주를 마시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바로 앞이 항구라 분위기는 더 없이 좋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400㎖ 생맥주 한 잔이 무려 89크로네(약 1만2,200원), 땅콩 몇 알 든 깡통 안주가 35크로네다. 그래서 보통은 안주 없이 맥주만 즐긴다. 한국에서처럼 연장자가 ‘내가 쏘겠다’며 호기를 부리기엔 부담되는 가격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신용카드로 각자 계산해도 종업원은 언제나 친절하게 ‘오케이’다.

베르겐에서 가장 붐비는 베르겐 항구 인근. 도시의 중심이자 피오르 여행의 출발지다.
브리겐 역사지구 앞 광장에서 관광객이 맥주를 즐기고 있다.
400㎖ 한 잔에 약 1만2,200원. 물가 비싼 노르웨이에선 ‘한 잔 쏘겠다’고 호기를 부리기 쉽지 않다.
베르겐 피시마켓에서 본 브리겐 지구. 맑다가, 흐리다가, 비오다가…날씨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

브리겐에는 목조 주택 외에도 중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전문병원이 있는가 하면, 13세기에 건설한 석조 건물인 호콘성이 항구를 감시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요새 뒤편 공터는 누구나 걷고 쉴 수 있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구도심 한복판에도 ‘작은(Lille) 호수’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공원이 배치돼 있다. 노르웨이의 국민 음악가 그리그 동상을 중심으로 음악 정원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고,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코데미술관(KODE3)도 호수와 인접해 있다. (코데는 현대미술, 공예, 디자인, 음악을 망라한 북유럽 최대 박물관 중 하나로 이곳에 4개의 대형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호수 주변 벤치에 앉으면 플뢰위엔 산자락에 자리한 주택이 또 그림처럼 펼쳐진다. 베르겐을 걷는다는 것은 동화처럼 잘 꾸민 정원을 산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베르겐 중심부에 노르웨이의 대표 작곡가 그리그 동상과 공원이 조성돼 있다.
베르겐 시내 중앙의 코데미술관. 4개 전시장 중 코데3은 ‘절규’로 유명한 뭉크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있다.
코데미술관 앞 호수 벤치에 앉으면 플뢰위엔 산자락의 주택들이 또 그림처럼 펼쳐진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은 베르겐도 날씨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비를 흩뿌리다가도 순식간에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등 하루에도 수없이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코데미술관에 걸린 그림 속 풍경에서도 완전히 맑은 하늘은 찾기 힘들었다. 회색 물감을 두껍게 바른 유화 작품이 그래도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날씨보다 화사한 베르겐의 도시 풍경 때문이었다.

 ◇고래고기 버거 먹을까 말까 

항구와 접한 수산시장(피시마켓)은 무역과 어업으로 번성한 베르겐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활어가 펄떡거리는 한국의 어시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노르웨이의 대표 어종인 연어와 대구를 비롯해 각종 어패류가 모두 모여 있지만 대부분 깔끔하게 손질된 채 냉장실에 진열돼 있다. 연어 김밥도 눈길을 끄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래고기 요리다. 노르웨이는 일본, 아이슬란드와 함께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아직까지 고래잡이를 포기하지 않은 나라다. 쿼터를 정해 매년 약 800~1,000마리의 고래를 잡는다. 끔찍이도 환경을 생각하는 나라에서 가장 예외적인 행위다. 베르겐 수산시장에도 고래고기 버거와 스테이크를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 겉보기는 일반 햄버거와 차이가 없는데, 심리적 거부감 때문인지 맛은 소고기 버거보다 못했다. 고래잡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결코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베르겐 피시마켓에서 요리사가 생선을 다듬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래고기 버거. 고래잡이에 반대한다면 굳이 주문하지 않을 듯한 맛이다.
연어와 함께 노르웨이 국민 생선인 대구. 염장 대구 요리는 한국인 입맛에 아주 짠 편이다.

연어구이, 연어김밥, 연어샐러드 등 연어 요리는 노르웨이 어디서나 흔한 음식이다. 연어 못지않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어종이 대구다. 요즘처럼 저장 설비를 갖추지 못한 시절,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는 것은 세계 공통의 생선 저장 방식이었다. 노르웨이에서는 별다른 향신료를 첨가하지 않고 염장한 대구를 도톰하게 잘라서 구워 먹는다. 생선살이 탱탱하고 쫄깃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국인 입맛에는 많이 짠 편이다.

송네피오르 발레스트란의 한 농가식당에서 판매하는 애플 사이다. 알코올 4~14도의 과실주다.

농가식당에서 식사 때 곁들이는 수제 애플 사이다도 노르웨이의 빼놓을 수 없는 특산물이다. 피오르 주변 바닷가의 언덕배기마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다양한 과일 나무가 심겨 있다. 줄을 맞춘 대규모 과수원이 아니라 비탈 자리가 허락하는 만큼 심어 자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수확한 과일로 농가마다 다양한 애플 사이다를 만든다. 이름은 사이다지만 증류 방법과 재료에 따라 알코올 4~14도,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조화된 과실주다. 송네피오르 주변에서는 발레스트란의 발홈이 꽤 알려진 브랜드다.

롬스달피오르의 작은 도시 온달스네스의 5월 풍경. 설산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부두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온달스네스에서는 초보자를 위한 암벽 등반 프로그램이 인기다. 조금만 올라도 풍경이 아찔하다.
 ◇노르웨이 여행 정보 

▦한국에서 노르웨이까지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대한항공이 여름철 한시적으로 직항을 운행한다. 올해는 6월 14일부터 8월 9일까지 매주 금요일 인천~오슬로 직항을 운행할 예정이다. 평시에는 터키항공으로 이스탄불을 경유하거나 핀에어를 이용해 헬싱키에서 갈아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르겐 도심은 항구를 중심으로 걸어서 20분 정도면 어디나 닿을 수 있다. 베르겐은 피오르 유람선 여행의 출발지다. 매일 30편 이상의 유람선이 송네피오르를 비롯한 노르웨이 서부 해안의 여러 피오르로 운행한다. 이맘때 피오르는 설산의 눈이 녹아 곳곳에 폭포가 쏟아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일부 고지대는 한여름에도 만년설에 덮여 있다. ▦노르웨이는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싼 편이다. 생수 한 병에 최소 3,000원, 맥주 한 잔(캔)에 1만2,000원 정도 생각해야 한다. 베르겐 피시마켓의 일부 식당은 한글 메뉴판을 제공하고 있다. 메인 요리 가격은 150~270크로네, 여기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3만~5만원이다. 노르웨이는 유로 대신 자국 통화인 크로네를 사용하지만, 모든 상점과 식당에서 아주 작은 금액도 신용카드로 계산할 수 있어 환전하지 않아도 여행에 불편함이 없다.

베르겐=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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