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ㆍ협력 필요성을 역설해 온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함에 따라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11일 오전 기준 북한은 이희호 여사 조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도 조전(弔電)을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남북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과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희호 여사가 북측과 교류를 해온 사실을 감안할 때 조문단을 파견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북한은 앞서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 등 6명으로 구성된 조문단을 1박 2일 일정으로 파견했다. 북한은 조문단 파견에 앞서 서거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유가족 앞으로 전했고, 이희호 여사는 조문단 편으로 감사 서신을 보냈다.
북한이 이희호 여사 조문을 위해 방남단을 구성한다면, 통일전선부 인사가 여기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200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도 북한은 송호경 통전부 부부장 겸 아태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을 파견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파견했던 것처럼 고위급 인사를 파견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고위급 인사로 구성된 조문단이 파견될 경우 남북 대화가 자연스럽게 재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고위급 인사를 내려 보낸다는 것 자체가 남북 대화 재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멈춰버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조문단 방남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0년 전 조문단도 빈소에 들른 뒤, 김대중평화센터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고 김형오 국회의장 및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만나는 등의 정치 일정을 수행했다.
물론 조전만 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 남북 교류ㆍ협력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거나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군사 훈련을 강행하고 있다’며 북한이 전방위적 대남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문단 파견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만 유족에게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의 조문단 파견 여부와 (파견되는) 조문단의 위상은 김 위원장의 남북 대화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는 남편의 서거 이후에도 북측과 교류를 이어오며 남북 관계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2011년 12월 조문을 위해 방북길에 올랐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 이곳에서 상주인 김정은 위원장(당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도 만났다. 새 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난 남측 인사였다.
2015년 8월에도 이 여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찾았다. 당시 93세의 고령이었는데 그는 평양산원ㆍ옥류아동병원 등을 방문하고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박람관과 보현사를 둘러봤다. 또 자신이 설립한 인도적 지원 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회원들과 함께 짠 어린이용 털모자와 의약품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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