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1년 만에 만족도 평가 급등… 학부모 ‘학업 불안’ 신뢰로 변해
신명숙 교장 “노는 학교라는 소문, 가짜 뉴스가 혁신학교 발목 잡아”
“까딱하다가는 내가 60년 전 받은 교육을 손주들한테 시키겠더라고.”
서울 강남구 구룡초의 학부모 마음공부 동아리인 ‘우리 부모가 달라졌어요’ 모임에서 지난 5일 만난 문지영(가명ㆍ70)씨는 각종 학부모 연수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문씨는 맞벌이 하는 큰 아들 부부를 대신해 이 학교 1, 2학년에 재학 중인 손주들을 키우는 주 양육자다. 자녀에겐 ‘SKY 보내려고 과외 시키는 교육’을 했지만, 손주들에겐 이를 답습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한 문씨는 혁신학교의 교육 방식이 반갑다고 했다. “혁신학교는 선생님도 연구를 많이 해요. 일기에 날씨 하나를 쓰더라도 그냥 ‘흐림’으로 안 쓰고 ‘해님이 선글라스를 낀 날’로 쓸 수 있게 하더라고요.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이제는 반려견 변호사도 생기는 시대라는데 애들 교육도 달라져야지 않겠어요.”
현실의 변화는 그러나 여전히 더디다. 특히 강남은 ‘혁신학교의 무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전 인근의 대곡초, 개일초가 혁신학교로 전환하려 했지만, 학부모들 반대에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도 상정되지 못한 채 줄줄이 좌절됐다. 반대 사유는 하나같다. 학력도, 집값도 떨어진다는 것. 구룡초는 독특하게도 이런 강남 한복판에서 성공한 혁신학교가 됐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학교운영만족도평가는 이전에 5.0점 만점에 4.0점에서 머물던 것이 지난해 혁신학교로 전환된 후 4.7점으로 뛰어올랐다.
처음에는 다른 강남 지역 학교처럼 반대가 있었다. 학부모는 절반 넘게, 교사도 당시 31명 중 12명이 반대를 했다. 신명숙 교장이 학부모 설명회에서 ‘미래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혁신학교는 일반학교와 동떨어진 학교가 아니다’라며 수 차례 설득한 끝에야 학부모 동의가 절반(78%)을 넘어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작 2년이 채 안 돼 학부모들의 ‘불안’은 학교에 대한 ‘신뢰’로 변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아이들의 변화였다. 학부모 대표인 김인경씨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 많다는 점을 혁신학교의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그는 “작년 가을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알뜰시장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1인당 최대 사용 금액은 얼마로 할지, 수익금은 어디에 쓸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행사를 기획하고 이끌어 나가더라”면서 “이런 것을 해 본 아이와 해 보지 않은 아이들이 앞으로 커나가는 데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연극 배역을 나눌 때도, 학교의 화장실 개선 공사를 할 때도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꾸준히 줬다. 학부모 노희정씨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학교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며 “지금 이런 활동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사회에 나가서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교 구성원들은 ‘혁신학교는 공부는 안 시키고 노는 학교’라는 세간의 인식이 가장 큰 오해라고 했다. 신 교장은 “교육과정은 동일하지만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 애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사회 시간에 경제 활동을 배운 뒤, 아이들에게 예산에 맞춰 교내에서 1박 2일 캠프를 하는 동안의 식단을 짜도록 하고 직접 장을 봐오라고 하는 식이다. 교사들의 공이 배로 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3학년 부장 교사 원소연씨는 “혁신학교라는 간판이 걸리면서 교사들에게 자율성이 생겼고, 그러면서 교육과정 재구성을 할 때나 운동회, 졸업식 같은 학교 행사를 준비할 때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5학년 김지율양도 “선생님이 단원평가를 볼 때 문제에 반 친구들 이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셔서 재미있다”며 “저는 (혁신학교가 되고 나서) 공부를 더 잘 가르쳐주신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일선 교사들이 수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 교장이 혁신학교로 전환하면서 늘어난 여러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3명의 전담 교사를 둔 것도 큰 몫을 했다.
이날 만난 학생부터 교사,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혁신학교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해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평가에서는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소감까지 나왔다. 신 교장은 “제대로 경험한 학부모나 교사의 말이 아닌, 떠도는 소문과 가짜뉴스로 혁신학교가 추진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혁신학교에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희 학교를 찾아 오셔도 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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