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상공에 떠 있던 헬기에서 헌혈하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어요.”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병원에서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시민들에게까지 헬기 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0일 오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사건 3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최윤춘(56)씨는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레 꺼냈다. 5ㆍ18 당시 광주간호원보조양성소에 다니면 광주기독병원에서 실습 중이던 최씨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헌혈하려고 병원 정문에서 응급실 쪽으로 줄 선 시민들을 향해 헬기 한 대가 총을 쐈다”고 말했다. 최씨는 “당시 총상 환자가 많이 바닥에 흘려진 피를 닦는 등 뒷정리를 하고 의료소모품을 의료진에게 가져다 주는 게 임무인 탓에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워 헬기 사격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와 총소리를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검사의 신문에 당시 헬기 사격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날은 무척 맑은 날이었습니다. ‘따따따따.’ (헬기에서 쏜)총알이 병원 마당에 튈 때 하나가 튀는 게 아니라 빗방울이 마른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총알이) 튕겼어요.” 최씨는 “당시엔 사람 살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어떻게 헬기에서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못했다"며 “당시 병원 응급실엔 총에 맞아 허벅지 한쪽 살이 떨어져 나간 환자나 살이 너덜너덜한 환자들이 즐비했다”고 당시 참상을 전했다.
최씨는 이어 “당시 헬기에서 쏜 총알이 땅바닥에 맞고 헌혈 대열 후미 쪽으로 튕겼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튕긴 총알에 맞아 다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반대 신문을 통해 “당시 헬기 사격 목격했다는 걸 증명할 자료가 있느냐”고 묻자,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고 쏘아 붙였다. 최씨는 “그간 살아오면서 헌혈하려다가 헬기 사격을 받고 다친 사람을 목격했다는 말도 못하고 살아왔다. 말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정수만(73) 전 5·18 유족회장도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오후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정 전 회장은 “옛 전남매일신문사 앞쪽에 있다가 소강상태가 지속하자 동명동 집에 가려고 남동과 서석초등학교 방면으로 갔다”며 “광천주조장 앞에서 사람이 한 명 죽어 있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정 전 회장은 그러면서 육군 항공대 상황일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보급지원현황 자료, 계엄군의 진술 기록 등을 제시했다. 육군 항공대가 전교사로부터 실탄을 재차 받아간 기록, 1980년 5월 21일 오후 5시께 폭도 2명을 사살했다는 기록 등을 제출하겠다고 밝혔으며 항공기 총 31대의 운항기록이 10장밖에 되지 않는다며 군 차원의 은폐 가능성도 주장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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