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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ILO 100주년

입력
2019.06.1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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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영국의 로버트 오언(1771~1858)이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뉴래너크에 설립한 공장공동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동시간과 복지 혜택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16시간 장시간 노동이 아무렇지도 않던 산업혁명기에 9시간 노동을 실현했고,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10세 미만 어린이의 노동도 허용하지 않았다. 공장 주변에 아예 노동자 마을을 조성해 의료ㆍ교육 등의 복지 서비스도 제공했다. 그때로서는 거짓말 같은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헌신적으로 일했고 생산성도 높아 공장 경영도 성공적이었다.

□ 오언 같은 선구자들이 제창했던 노동시간 단축, 아동노동ㆍ임금 차별 금지, 노동자에 대한 복지 혜택 제공 등을 제도적으로 확립한 세계적인 전환점은 국제노동기구(ILO) 출범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공산주의 혁명에 자극받은 유럽 각국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국제입법노동위원회를 설치해 노동에 대한 국제 규범 작성을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그 해 4월 작성돼 뒤에 베르사유 조약에 ‘ILO 헌장’으로 반영된 ‘노동‘ 문서였다. ILO는 지금은 유엔 전문기구 중 하나지만 역사를 따지면 유엔보다 30년 가까이 먼저 태어난 유구한 국제기구다.

□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ILO를 노동자 이익만 대변하는 기구로 오해한다. ILO 창설 당시 구성된 ‘국제노동총회’나 집행기구인 ‘이사회’는 모두 노사정 3자 구성을 원칙으로 했다. 1919년 10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총회에 참가한 40개 회원국 대표단의 기본 구성도 정부 대표 2명, 사용자 대표 1명, 노동자 대표 1명이었다. ILO의 여러 협약은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 정의를 바탕으로 확립 가능하다’는 헌장 전문 첫 문장에서 드러나듯 대의명분을 좇는 사회적 대화의 산물이다.

□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ILO가 10일부터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총회를 열고 있다. 이번 총회에는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기조연설자로 초대됐지만 북유럽 순방 등 일정이 겹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이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실패하고 국회 비준까지 산 너머 산이라 참석하는 것이 오히려 모양새가 이상할 뻔도 했다. ILO가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는 시점에 한 세기 전의 협약도 비준 못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이 안타깝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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