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LV 은행 로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북 불법송금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미국 재무부 제재를 받고 사실상 파산 상태에 놓인 라트비아 은행의 대주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근을 통해 구명을 시도하고 있다. 자체 청산에 돌입했던 라트비아 3대 은행 ABLV의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 측근을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10일 미국의 로비ㆍ정치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브라이언 란자가 ‘ASG 캐피털’이란 회사와 로비 계약을 맺었다. ‘ASG 캐피털’은 에르네스츠 베르니스 ABLV 회장의 개인 기업인데, 워싱턴 정가에서는 란자와 ‘ASG 캐피털’ 사이 로비계약의 실제 목적은 ABLV 청산과 관련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BLV는 지난해 2월 북한을 포함한 유럽 정치인들의 자금 세탁을 방조한 혐의로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이 됐다. 이후 ABLV는 순식간에 6억유로(약 8,000억원) 상당의 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를 겪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유동성 악화를 감지해 ABLV의 파산을 예고하기도 했다. 결국 작년 2월 26일 자체 청산에 돌입했는데, 이번 로비계약으로 과거 경영진에 유리한 청산방안에 미국 재무부가 동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미 재무부는 ABLV가 세탁한 자금은 북한 핵개발을 포함해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에게 송금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베르니스 회장은 “이러한 제재가 러시아인들과 거래하는 ABLV에 불만을 품은 미 당국이 보복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ABLV 예금거래의 30%는 러시아인에 의해 행해졌지만, 그의 호소는 묵살됐다. 또 과거 경영진의 이익을 보장하는 자체 청산 방안도 마련됐지만 미 재무부가 이를 거부했다.

CRP는 그러나 이번 로비 계약으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베르니스 회장의 호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깊은 의사결정 단계까지 전달될 통로가 열렸다는 것이다. 베르니스 회장은 현재 ABLV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청산안을 미국 재무부가 승인토록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 마련된 이 청산방안은 ABLV 지분의 43%를 소유한 베르니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르니스 회장의 구명을 도와줄 로비스트로 선택된 란자는 워싱턴 소재의 로비회사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 대선캠프에서 근무했으며, 이후에도 “백악관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에는 이란과 북한에 통신장비를 불법 거래해 제재 대상이 된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중싱통신)의 로비를 맡기도 했다.

조희연 인턴기자 최나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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