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이후 대법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법원 개혁에 나섰지만 식물 국회가 지속되면서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와 상명하복 문화 등 법원의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은 대부분 입법 사항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기능마비가 법원 개혁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50개. 이 가운데 판사의 정년퇴직일을 상하반기 특정일로 고정하는 개정안 등 4개를 제외한 46건의 개정 법률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등 소관 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원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법관 퇴직 후 일정기간 내 청와대로 이동 금지 등과 관련해서 발의된 15건의 개정안은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지난해 초부터 집중적으로 발의된 법안들 대부분은 여야 정쟁으로 차일피일 심사가 미뤄지다 올해 들어서는 국회의 기능 마비로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개혁 입법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사법농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법원개혁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됐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외부인사 4명을 포함해 11명으로 구성된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겠다는 법원의 야심찬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법원조직법에 근거를 둔 법원행정처 폐지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심의의결기구로서의 사법행정회의는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규칙을 수정해 자문기구로 출범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된 상태라 이달 말로 활동을 종료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끝나기 전엔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는 게 대법원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위가 끝나도 법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기 때문에 결국은 또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이러다 개혁시기를 놓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법안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대법원이 개혁입법의 통과를 기대하며 지난해 2월 정기인사부터 고법 부장판사 신규 보임을 하지 않고 ‘직무대리’로 인사를 내면서다. 직무대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인사난맥상이 극에 달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법원은 승진에 목을 메는 관료화를 방지하고 양심에 따른 재판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정법안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도리어 편법운영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법관의 청와대 이동을 제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법관 퇴직 후 최소 1년간 청와대행을 막은 법안은 2017년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이 진작에 통과됐다면 김영식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솜방망이 징계도 법원개혁에 제동을 거는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 1차 징계에서 징계 청구된 법관 13명 중 8명만 ‘품위 손상’으로 징계를 받은 데 이어, 최근엔 검찰에서 비위를 통보한 66명 중 10명만 징계가 청구됐다. 그나마도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이유로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난 법관도 32명에 달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비위법관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면서 법원 스스로 개혁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면서 “국회는 물론 법원 내부적으로도 개혁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