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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상사를 ‘당신만의 소설’에서 혼쭐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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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상사를 ‘당신만의 소설’에서 혼쭐내줄게요”

입력
2019.06.1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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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처방 서비스 앱 ‘바이트’ 운영자 김수량씨 

지난해 11월 부산진새로일하기센터가 주최한 문화행사 '퇴근길 소확행'에서 오튼(오른쪽)작가가 소설처방 참가자를 면담하고 있다. 바이트 제공
지난해 11월 부산진새로일하기센터가 주최한 문화행사 '퇴근길 소확행'에서 오튼(오른쪽)작가가 소설처방 참가자를 면담하고 있다. 바이트 제공

미국 변호사협회에서 기자로 일하던 남자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있다가도 소재가 떠오르면 글을 써야겠다고 자리를 떴던 그는 스펜서 존슨의 ‘1분 경영’이 세기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무렵, 소설가로 먹고 살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바로 사람들의 사연을 소설로 써주되, 집필 시간을 딱 1분으로 하는 것. ‘꿈이 현실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0초’ 그는 간판을 걸고 미국 전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고 2만2,613편의 소설을 썼다. 국내에도 번역된 댄 헐리의 ‘60초 소설’이 탄생한 과정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야기 큐레이션 응용소프트웨어(앱) ‘바이트-한입거리 이야기’가 운영하는 ‘소설처방’에서다. 이 앱을 통해 간단한 신상정보와 사연을 써서 보내면 2,000자 분량의 소설로 쓰여 사연자에게 전달된다. 이용료는 단돈 3만원. 김수량(42) 바이트 대표는 “픽션(허구)이란 점이 매력적이다. 작가들이 의뢰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꿈을 이뤄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소설처방의 의뢰자 수는 500명을 넘었고 이중 36명의 사연이 ‘3분 소설’(출판사 에이치 발행)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여 다음 달 출간된다.

김수량 바이트 대표는 “소설 처방 의뢰인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 가장 많다”며 “소설을 통해서나마 꿈을 이뤄주고 고민을 해결해준다 점이 흥미를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트 제공
김수량 바이트 대표는 “소설 처방 의뢰인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 가장 많다”며 “소설을 통해서나마 꿈을 이뤄주고 고민을 해결해준다 점이 흥미를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트 제공

김 대표의 전직은 홍보전문가다. 20대 때 꿈이 소설가였는데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어” 홍보대행사에 취직했고 대학원에서 문예창작도 전공했지만 꿈을 꿈으로만 간직한 채 10여년 간 ‘홍보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다니던 대행사가 웹소설 사이트 ‘조아라’의 홍보를 맡게 됐다. “2009년부터 조아라의 매출이 전년대비 10배, 20배 뛰더라고요. 이 성장세면 제가 가서 더 크게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5년 조아라로 이직해 3년여간 홍보팀장, 전략기획팀장, 서비스기획팀장 등 주요 실무 보직을 거쳤고, 사내벤처 제도로 앱 ‘바이트’를 만들었다. 대중이 책이나 긴 글 읽기를 기피하는 최근 추세를 반영해 엽서 한 장 분량의 시, 소설, 에세이를 자유롭게 투고하고 공짜로 본다는 취지였다. ‘카카오 브런치의 버티컬 버전’인 앱을 더 집중적으로 운영하고 싶어 김대표는 지난 해 봄 독립했고, 전 회사는 1억원을 투자했다. “수익 모델을 고민하던 차에 바이트에서 활동하는 작가 한 분이 댄 헐리 아이디어를 차용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작년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즉석에서 소설 써주는 행사를 처음 열었죠.”

‘어떻게 하면 내 사연을 소설로 써줄 수 있냐’고 회사로 문의가 잇달았다. 웨딩박람회, 도서전 등 문화축제에서 ‘즉석 소설’ 이벤트가 인기를 끌자 김 대표는 앱에서 사연을 직접 접수 받는 ‘온라인 서비스’를 올 4월 열었다. “사연에 맞춰 장르별 맞춤한 작가에게 집필을 의뢰해요. 예컨대 직장 상사한테 시달린다는 사연을 판타지 작가에게 의뢰하면 사연자가 용사가 돼 때려준다는 식으로, 리얼리즘 작가에게 의뢰하면 사연자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 그 회사의 바이어로 상사를 다시 만나 갑질한다는 식으로 풀어가죠.”

‘나만의 소설’로 삶에 희망을 얻게 됐다는 반응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작년 10월 쯤, 2018년에 나쁜 일을 너무 많이 겪은 의뢰자를 만나 그 일들을 회상하는 소설을 만들어드린 적이 있어요. 의뢰자가 ‘아직 두 달이 남았고, 그 두 달에 대한 소설은 직접 쓰고 싶으니 맨 뒤에 빈 종이를 추가해 다시 제본해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보내드렸죠. 아주 좋아하며 ‘2018 인생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게 열심히 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의뢰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출간된 소설들. 2000자 내외의 짧은 소설은 책으로 엮여 의뢰인들에게 배달된다. 바이트 제공
의뢰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출간된 소설들. 2000자 내외의 짧은 소설은 책으로 엮여 의뢰인들에게 배달된다. 바이트 제공

김 대표는 “모두가 글을 쓰고 읽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 앱 ‘바이트’를 만들었지만 일반인에게 글을 쓰고 투고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두 번째 단행본도 준비 중이다. 36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나만의 소설’이 만들어지는 책 ‘2분의 1 DIY’(가제)”라고 말했다.

19~23일 서울 코엑스몰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설처방’을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다. 바이트 소속 작가들이 신청자들의 사연을 즉석에서 듣고 작품을 써준다. 김 대표는 “이르면 ‘2분의 1 DIY’ 프로젝트도 도서전에서 함께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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