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세종실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 장면의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1년이다.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70년 적대의 ‘장기지속’, 그 단단한 역사의 하중, 켜켜이 쌓인 ‘가능성의 한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남북미는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했다. 명확해진 것들이 생겼고 가능성의 지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를 알고 감당해 내기 위한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미 사이 드러난 한계와 가능성의 지점은 무엇일까.

우선 비핵화 프로세스다. 신뢰 확인 첫 단계 조치 후, 비핵화의 단계적 합의ㆍ이행을 주장하는 북한. 초기에 포괄적인 일괄타결 후, 신속한 비핵화 이행을 요구하는 미국. 대북제재의 부분적 해제를 ‘신뢰’의 증표로 보는 북한, 제재를 비핵화로 압박·유인하는 ‘결정적 수단’으로 믿는 미국. 그러나 비핵화 구체성에 대한 정치적 확약, 비가역적 돌입지점 합의, 대북제재의 점진적ㆍ단계적 해제 방안 공유 등 가능성의 지점들이 존재한다. 북미 대타결의 문을 여는 ‘신뢰’는 정치기술적 합의의 문제다.

둘째, ‘비핵화 vs. 안전보장’의 구체성 확보다. 비핵화는 무엇이며 어떤 요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포괄적 비핵화 방식’에 대한 공유, 북한에 제공해야 할 안전보장,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은 무엇인지에 대한 ‘포괄적 안전보장 방식’에 대한 공유다. 지금까지 북한은 ‘소극적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로 너무 경도됐고 미국은 포괄적 비핵화 요구만큼 안전보장 방안의 구체성과 제재 해제 시점 약속에 인색했다. 이제 6ㆍ12로 돌아가 모든 것을 펼쳐 놓고 얘기해 볼 때다. 김 위원장도 일방적 요구조건을 내려놓고 건설적인 해법을 강구하자 했다.

셋째, 톱다운 시스템이다. 정상 간 소통 이외에, 위로부터 아래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의 결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북한체제, 비핵화 실무협상 관료들의 협상력 한계, 전문성 부족 등이 원인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폐쇄적인 비핵화 결정 구조가 치명적 장애만은 아니다.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유도하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인센티브’ 활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태도다. 미국은 남북관계를 대북제재 관점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 북미협상보다 남북관계가 앞서가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협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미국은 자주 잊는 듯하다. 자주성을 주장하는 북한 역시 필요에 따라 북미협상용으로 남북관계를 흔들곤 한다. 한국의 독자적인 공간, 지렛대가 확보되지 않은 탓이다.

가능성은 ‘정확한 눈’과 ‘자신만의 무기’를 확보할 때 보인다. 그래서 12일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오슬로 연설’은 중요하다. 대통령이 인식하는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한계와 가능성의 지점들, 의지와 표상, 그리고 대북 메시지가 주목된다. 지금 국면에 중요한 것은 ‘대북 메시지 관리’와 ‘남북관계의 자율적 공간’ 확보다. 현재의 제재, 한미워킹그룹, 남북 속도 조절은 북미 및 남북 모두 공멸하는 위험한 구도다. ‘한미워킹그룹’ 없어도 공조는 가능하다.

대북 인도적 협력·지원, 3대 남북사업 재개, 군사합의 이행, DMZ의 평화지대화 등에서 과감한 선제적 추진이 필요하다. 물론 대북제재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다. 지레 제재에 경도된 소극적 관료주의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한국의 주권 차원에서 적극적 논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메시지 관리에서 실패하면 시작도 못 할 수 있다. 최근 메시지 관리의 허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북한을 움직이려면 최소한 자발성, 대등함과 존중, 경제적 실익을 고려해야 한다. 오슬로 연설은 우리의 의지와 표상이어야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