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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초 방송에 출연해 던진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현재보다 5년 긴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0세 정년 의무화가 전면 시행된 지 겨우 2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든 터라 일각에서‘뜬금 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정년 60세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년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대부분(정년제 도입 비율 20.7%ㆍ2017년)이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청년층의 신규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 역시 공감을 얻는다. 또한 정년 연장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아 뚜껑을 여는 순간 노소, 노사, 심지어 노노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대립할 것이 확실해 공연히 사회적 분란만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조바심을 내는 이유에도 납득이 간다. 우리나라는 노인 대국 일본(12년)보다도 짧은 기간(9년)에 고령사회(전 인구의 14%가 노인ㆍ2017년)에서 초고령사회(전 인구의 20%가 노인ㆍ2026년)로 바뀌게 된다. 현기증 나는 고령화 속도에 반비례해 출산율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은 인구의 자연감소가 3년 전 추산보다 10년이나 이른 올해부터 시작된다고 수정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출생자 숫자가 사망자 숫자보다 적어진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가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연간 80만명, 진입하는 사람이 40만명”이라며 생산가능인구 급감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건강보험ㆍ기초연금ㆍ국민연금 등 주요 사회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에 경고등이 켜진 점까지 감안하면 정년 연장은 당위의 문제가 아닌 시점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어차피 겪어야 할 진통이라면 정년 연장 논의 시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셈이다.

물론 정년 65세 연장은 정년 60세 의무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장을 미칠 것이다. 성패는 사회적 합의에 달린 셈인데, 주5일제 등 제도가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수혜자가 됐던 전체 노동자 7~10% 정도인 상층 노동자들의 양보 없이는 합의는 불가능하다. 임금삭감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양보 없이 얼렁뚱땅 정년연장이 이뤄진다면 이는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공공부문, 대기업 노동자들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잘못하면 다수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만 깊어질 수도 있다.

2013년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이 논의될 당시 이를 주도했던 야당 의원실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일찍 은퇴시장에 내몰리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정작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정년도 연장 받고 싶고 임금도 보존 받고 싶다고 의원실에 전화를 해왔다. ‘이게 아닌데’했던 기억이 난다.”

항간에는 정부 여당이 불쑥 정년 연장 논의를 꺼낸 게 총선을 10개월여 앞두고 지지층인 노동계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정략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이를 불식시키려면 정부와 여당은 정년 연장의 핵심은 ‘고용과 임금의 교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못박아야 한다. 6년 전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을 논의할 당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정년 의무화의 전제가 돼야 할 임금 삭감에 대해 노사 자율 영역이라며 “임금피크제는 못 받는다”, “임금이 깎일 우려가 있으므로 ‘임금조정’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실제 법안은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로 표현됨) 며 노동계를 편든 이들은 지금 범 여권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년 연장이 ‘초고령ㆍ초저출산 사회’로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합리적 해법이 되려면 양 손에 떡을 쥐려는 특정 집단에게 ‘체리 피킹’을 허용해선 안 된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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