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충돌 극단화 시 국익 지키기 어려워
G20 계기로 한풀 꺾이길 기도해야 할 판
전례 없는 상황에 위기대응 수준 대비를
양보 없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AFP=연합뉴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개입한 첫 전쟁인 한국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갓 독립한 신생국 중국의 개입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지 못해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미국 사회에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됐으며 중국 트라우마가 자리 잡게 됐다는 평가가 있다. 개혁ᆞ개방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돼 중국이 국력을 키우는 과정에 미국은 방관자나 다름없었으나, 최근 10년 정도 시기를 두고 중국의 굴기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군사대국화다. 미국의 용인이 없고서는 패전국 일본이 세계 6위권의 군사력을 키우긴 불가능하다.

지금 중국의 역량이 미국에 맞설 정도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지만,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지역 패권을 넘어 세계 경영의 꿈을 표출한 결과가 바로 일대일로 전략이다. 제국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축적과 확산이라는 자본의 본질에 비춰 G2로 올라선 중국의 이러한 전략 채택이 필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강력한 중국 압박과 견제 또한 불가피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부터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과 군사적 갈등이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정부의 특수성에만 기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관세전쟁과 기술패권 다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지금 국면에서 힘의 우위에 있는 미국이 중국의 응전에 연합세력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튀는 건 시간문제가 됐다. 중국의 세계적인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의 축출을 위해 공공연히 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사실상 독점인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조짐에 미국이 서방과 일본 한국 등 동맹 공조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이 힘을 과시하기로 결심했다면 과연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싶다. 이라크 파병을 예로 들어보자. 이라크에 대해 독자적인 군사력을 행사한 1차 걸프전 당시 미국은 주요 동맹국을 상대로 전비(戰費)를 거두려 다녔다. 일본이 130억달러를 내기로 했으니 한국은 경제력 차이만큼인 10억달러를 내라고 했다. 한국은 깎고 깎아서 5억달러로 무마했다. 미국에 가장 껄끄러운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정부조차 명분 없는 전쟁 개입에 대한 국론분열과 지지층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전쟁을 벌이던 미국을 도와 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물론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미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지렛대가 됐다.

중국과 이라크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파병을 한다 해서 이라크나 탈레반이 우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하지만 우리의 수출 대상국 1위인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당장 주한미군 사드 배치만 해도 중국의 한한령과 관광객 제한으로 우리 관광산업이 박살 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드 부지를 제공했던 롯데가 큰 피해를 봤다.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 입김을 제한하려는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는 이처럼 과한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어 상황 악화 시 보복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중립 입장을 취하거나 미적거릴 때 미국의 압박을 견뎌 낼 수 있을까. 그나마 합리성을 가진 미국이 중국처럼 무지막지한 조치를 동맹국에 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가의 보도인 관세나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를 슬며시 꺼내드는 것만으로도 정치ᆞ사회적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바 있고, 최근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국방수권법 초안에 주한미군 감축 금지 조항이 삭제된 것도 예사로 여길 일은 아닌 것 같다.

미중 대결이 극단화할 경우 국익을 온전히 지키기 어렵기에 거친 황소싸움 양상이 이달 말 G20 회의를 계기로 한풀 꺾이길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우리는 지정학뿐만 아니라 지경학(地經學)의 충돌지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전례 없는 상황에 위기 대응 수준의 국가적 대비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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