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부담상한제 초기 진료비 자체가 큰 부담… 상병수당 확대를”
전직 요양보호사 이은하(가명ㆍ65)씨는 지난달 병원을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 위에서 울어버렸다.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로 관절염이 심해졌지만 치료비 20만원이 부담스러워 그냥 돌아섰다. 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홀몸으로 자녀들을 길렀지만 정작 자기 몸이 아프면 적은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신세가 서러워 이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저소득층의 스스로 평가한 건강상태는 국민의 평균 수준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에 따라 건강정도가 차이가 나는 건강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해 빈곤계층을 타깃으로 한 건강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중위소득 60% 이하) 가구 중 “건강하지 않은 편”이라거나 “건강이 아주 안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34%에 달했다. 이는 중위소득 60% 이상인 일반 가구(5.8%)의 6배 이상이다. 전년(32%)보다도 2%포인트 높아졌다. 반면“아주 건강하다” 또는 “건강한 편이다”라고 응답한 저소득가구는 40%로, 일반 가구(73%) 절반을 조금 넘었다.
저소득가구의 건강상태는 자기진단 뿐 아니라, 객관적 지표로도 악화가 확인됐다. 저소득가구 중 가구원이 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8%로 일반 가구(43.3%)의 1.7배에 달했다. 이 또한 전년 조사(71.4%)보다 나빠진 수치다. 우울증을 앓는 저소득 가구원이 있는 비율은 3.2%로 일반 가구(0.3%)의 11배에 달했다. 전년(2.76%)보다 높아졌다. 저소득 가구원이 가장 많이 앓는 질병은 고혈압(16%)이었고 이어 관절염ㆍ요통ㆍ좌골통ㆍ디스크(12.2%) 당뇨병(8.6%) 순이었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는 비율도 전년(14.8%, 7.8%)보다 높아졌는데, 이는 빈곤계층의 만성질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저소득 가구원의 64.6%가 만성질환을 6개월 이상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복지패널 조사는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의 가구 형태, 소득수준 등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로 2006년부터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보고서는 2017년 4,266가구 8,688명을 조사해 작성됐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전력하고 있는데도 건강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은 빈곤층은 당장 병원에 갔을 때 자기부담 때문에 치료를 회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빈곤층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가 신청해야 해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예컨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에 과도한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연간 최대 3,000만원을 지원하는 ‘재난적의료비 지원사업’이 있지만, 사업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정부는 관련 예산 365억원을 편성했지만 실제로는 120억원만 집행됐다.
이에 따라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준현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의료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돌려받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지만 저소득층으로서는 처음 내는 진료비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상병수당 확대 등 저소득층에게 의료비를 직접지원해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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