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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현 “정치인의 시대정신, 감수성도 업데이트 필요하죠”

입력
2019.06.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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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 젊은 정치] 릴레이 인터뷰 <2> 안상현 안씨막걸리 대표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상현 안씨막걸리 대표는 자신을 “생활정치인이자 한국술집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라고 소개한다.
안상현 안씨막걸리 대표는 자신을 “생활정치인이자 한국술집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라고 소개한다.

“우리가 지식적으로만 업데이트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전 오히려 윤리와 시대정신, 감수성도 반드시 업데이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치권에서 이런 시대정신과 감수성에 대한 업데이트가 안 되다 보니 젊은 세대의 정치혐오만 부추기죠.”

보스턴 컨설팅 그룹 컨설턴트, 희망제작소 연구원, 소셜커머스 기업 티몬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만 29세에 총선 비례대표 후보가 된 청년. 안상현(36) 안씨막걸리 대표의 이력이다. 잘나가는 벤처기업 20대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영입제안을 받고 사직 후 2012년 입당했다. 당은 청년후보 공모 ‘락파티’를 거쳐 청년 4명을 당선권에 공천하겠다고 했다. 기대와 달리 이 4명은 순번발표 시점에 안정권 2명, 가능권 2명으로 분산 배치됐고, 결국 2명만 등원했다. 안 대표는 비례 순번 28번이었다. 총선 후 별안간 백수가 됐다.

최근 만난 그는 “저는 여전히 행복한데 남들이 볼 때는 커리어 빌딩이 꼬인 셈”이라며 “누군가는 아 안상현처럼 출마했다가는 저렇게 되는구나, 당에서 버려지는구나 할 지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원래 정치의 속성이라는 게 그러하니 특별히 서운하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럴 수도 있다고는 봤는데. 다만 그런 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물을 주체도 없고, 지켜낼 가치 기준도 없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죠.” 그는 특히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애들이 뭘 알아”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청년에 대한 정치권 인식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2013년 이태원 경리단길 뒤쪽 외진 골목에 자리한 미용실을 인수한 그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를 차렸다. 100년 가게를 꿈꾸며 문을 연 식당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블루리본 서베이’ 등 주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한다.

안 대표는 “스스로 생활정치인이자 한국술집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라고 소개한다”면서 “생활정치라는 게 예전에는 지역구에서 경조사 챙기고, 조기축구회 나가며 인사다니는 것을 의미했다면, 지금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런 활동이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긴 하죠. 이젠 그걸 넘어 생활정치인들은 의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독서모임 클럽장을 다섯 군데 하고, 함께 뛰는 ‘막달리기’ 모임도 매주 열어요. 그런 한 시즌에만 100명 넘는 분들을 만나는데 함께 소통하며 이야기를 듣고, 의제를 만들고, 생각을 공유하죠. 전 이게 현대에 맞는 정치방식이라고 봐요. 우리 기성 정치도 그런 감수성의 업데이트를 해나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19대 총선 당시를 돌이킬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실은 (당선권에) 청년 비례대표 후보가 4명이어야 할지, 2명이어야 할지 이런 의사결정에 책임을 질 주축 세력이 없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인 거죠. 청년에 대해 누가 책임을 졌냐 안졌냐, 또 누가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냐고 책임을 물을 대상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쪽에서는 청년 몫을 네 자리를 해야 한다고 내세웠지만, 다른 쪽에서는 ‘뭐 굳이 애들한테 자리를 주냐’, ‘애들이 뭘 안다고’ 같은 말을 많이 했죠. 모두가 본인의 공천 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청년을 챙기고, 네 자리를 관철시키고 할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고 봐요.”

 -영입 제안을 받고 사직한 거잖아요. 

“영입 제안을 받았죠. 그런데 그것 또한 어느 계파의 누구를 통해서 왔는지가 중요한 거였죠. 보통 밖에서 볼 때 민주당이 영입을 제안했다고 받아들이잖아요. 그렇게 말하기가 편하니까요. 그런데 들여다 보면 ‘민주당’이라는 주체가 없잖아요. 쟤 누구 사람이야? 하면서 각자 다 따로 동상이몽 하는 건데, 어떤 확실한 보장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어떤 분은 그걸 부족장 사회라고 표현해요. 정치가 부족을 넘어서, 회사나 사회, 국가를 구성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누구의 계파나 사람이니 하고 각 수장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누가 청년 비례대표를 관철시키겠어요. 단지, 당시에 누군가 뜻이 좋은 사람이 어젠다로 던져 봤는데 그 세력이 당권을 확실하게 잡은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또 당이 확실히 책임을 지고 검증하고 공천권을 행사해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하니까 사회 저명 인사들을 불러다 공천심사위원회를 돌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거고. 그 와중에 서로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물밑 암투가 심하니까 그런 식인 거죠.”

 -당시 오디션에서는 성적이 좋았잖아요. 

“슈퍼스타 K 방식으로 해서, 이름이 ‘락파티’였는데. 법안도 만들고, 면접보고, 발표하고 했죠. 제가 2등이었어요. 결국에는 청년을 (당선권) 4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여성이 홀수 번호를 받다 보니 (제가 28번). 선거가 끝나고 그렇게 갑자기 백수가 된 거죠. 정치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 이기도 해서. 특별히 억울하다기보다,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다만 가치기준 조차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당시 반발은 없었나요. 

“한 번 아침에 최고위원회의 끝나고 이야기를 드리러 간 적은 있어요. 청년들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이야기를 해보자고 찾아 간 거죠. 주변에 있던 분들이 ‘어이! 어이!’ 하면서 가라고 제지하고 호통을 치며 상황이 종료됐죠. 그 뒤로는 몇 달 뒤 심사위원 중 한 분과 식사를 하는데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아니 거기서 애들 데려다가 뭘 하는 건지’, ‘그런 애들이 국회의원 하면 안되지’, ‘거기 나온 것 자체가 문제가 있지’라고요. 듣기에 무례할 정도로요.”

 -듣기에 황당했겠네요. 

“이게 선진 정당, 민주주의 정당을 갖춘 국가라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활동하는 청년 당원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대학생쯤 되면 어느 대학 지부에서 활동하거나, 꾸준히 차근차근 밟아 온 사람들이 당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또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인물들이 면접에 들어와야 맞는 거죠. 그런데 그런 구조도 갖추지 않고 청년들에게 ‘애들이 뭘 알아’하니 맞는 말은 아니죠.

차라리 기업은 그런 육성이나 훈련이나 시키죠. 정치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안되니까. 그렇다면 그 면접에 들어간 저도 과연 정치인으로서 훈련이 된 사람이었냐? 전혀 아니었죠. 티몬 전략기획실장을 하다 영입됐으니 당시에는 일종의 청년 명망가로 그 자리에 갔던 것뿐이죠.”

 -처음 정치하라는 제안은 왜 수락했나요.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이 비영리단체였어요. 대학 때부터 끝물이었지만 데모도 많이 나갔고,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 나름대로는 성직자 되는 마음으로 출마했어요. 주변에서 당연히 다 말렸거든요. 일단 부모님 결사반대로 싫어하시고. 괜히 뭐 묻고 흙 묻고 욕먹고 돈 되지도 않고, 그 뒤에 커리어 꼬인다고. 이미 다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개인에게 득 될 건 없죠.

결과적으로 제 사례가 그런걸 보여준 거죠. 저야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주변에 정치인 후보군이었던 역량 있는 사람들에게는 ‘야 저렇게 했다가는 안상현 꼴 나는구나’ 하는 걸 보여준 거죠. 저는 개인의 삶에서는 행복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커리어 빌딩의 측면에서 꼬인 거잖아요. 제 친구들 다 임원 달고 로펌의 파트너 달고 하는데.”

 -그 뒤로 느낀 게 많았겠네요. 

“당에서는 많은 사람이 일단 티몬이 뭔지를 모르더라고요. 또 보통 경영 쪽에서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 출신이라고 하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데, 마찬가지로 뭐 하는 곳인지 모르고. 그런 걸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면 당은 진작 IT산업에서 입법 리더십을 가져갈 수 있었겠죠. 블록체인 등이 이슈가 됐을 때도 이슈 파이팅을 할 수 있었을 테고요.

청년 빈곤 문제도 보고 있으면, 일단 파이를 키우는 차원의 고민이 절실한 것 같아요. IT 업계 이슈, 택시와 쏘카, 타다의 분쟁도 심각하잖아요. 게다가 불과 5년 뒤면 자율주행차가 들어 올 세상이고요. 그런 의제들을 당에서 끌어가면서 동시에 청년의 빈곤과 실업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이해가 있는 의원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의문이죠.”

 -그런데도 왜 청년 발탁에 소극적일까요 

“과거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30대, 40대 젊은 의원이 대거 입성했잖아요. 당시에는 리더십, 당권이 세니 ‘내가 데려올 거야’하면 적용이 됐는데, 지금은 다 본인의 앞길에 관심들이 많다 보니, 후배를 키우겠다 하는 개념이 없다고 봐요. 50대가 넘었어도 ‘아 내가 젊은 정치를 해야지’ 하는 거죠.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 업데이트 되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지식적으로 업데이트가 돼야 하지만 윤리나 시대정신, 감수성도 업데이트가 돼야 하거든요. 전혀 감수성 업데이트가 안 되는 분들이 많아지니 젊은 사람들이 점점 정치를 혐오하죠.”

 -감수성 업데이트는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어느 자리에서 ‘당이 청년 정치를 말하려면 당직자나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이렇더라고요. ‘아이, 그래서 정치하려면 부인을 잘 만나야 해’ 무슨 말인가 하면, 약사나 교사 부인을 만나 부인이 돈을 다 벌고, 애도 키우고 할 동안 나는 나와서 정치를 한다는 식 인 거죠. 그런 말을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게 감수성이 업데이트가 안됐다는 거죠.

다 인간적으로는 존경할 분들이죠. 선배들이 얼마나 힘든 시기를 거쳤어요. 민주화 운동을 힘들게 했고, 상대당은 더 과거에 머무르잖아요. 그런 과거에 머무르는 정당과 싸우다 보면 갑자기 자율주행차를 고민하고 이러기 쉽지 않죠. 하지만 그걸 고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런 젊은 의원이 30명도 안 된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요. 

“저는 엘리트주의자에요. 대의민주정치는 어느 정도 엘리트적인 게 있을 수밖에 없어요. 입법부의 권능을 강화하고 행정부 감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죠. 전문성을 끌어 올리고. 비례대표도 느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틀에서 옳다고 보죠. 지역 대표를 뽑는 것은 100년 전에 합의 된 개념이잖아요. 지금은 훨씬 더 다양한 직능과 정체성에 따라 대표돼야 할 부문이 훨씬 많아졌잖아요.

현실적으로는 정당 리더들, 정치의 기성 리더들이 독하게 마음 먹고 젊은 사람들을 확 끌어줘야 하는 것도 필요해요. 우리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위해서. ‘젊은 사람들 좀 도와 달라’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고서는 산적한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또 하나는 능력 있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정치를, 보상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저야 특이한 케이스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왜 정치를 하려고 하겠어요.

국가가 제대로 된 상황을 안 만들면서 무조건 창업하라고 사지로 모는 것이 잘못된 일이듯이, 출마할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누구나 꿈을 가져도 돼’,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어’라고 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죠.”

 -여전히 정치에 뜻이 있나요. 

“스스로 생활정치인이자 영세자영업자라고 해요. 옛날에는 출마하고 정치하려면 자기 지역구에서 동네 목욕탕 가서 등 밀어드리고, 조기축구회 나가고, 경조사 챙기고 이랬잖아요. 생활 정치라는 말이 그렇게 들리고. 물론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긴 하지만 저는 그걸 넘어서 어젠더를 리드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제가 독서모임 트레바리 클럽장을 5곳이나 하고 있어요. 그럼 한 시즌에 제가 만나는 분이 100명인데, 100명의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며 어젠더를 만들어 나가는 거잖아요. 이게 현대에 맞는 정치방식이라고 봐요.

‘막달리기’라는 모임도 해요. 집에만 박혀 있지 않고 뛰자. 함께 사는 이야기도 나누자.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이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문제, 정신 건강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돼요. 시민들이 공동체 경험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공동체 조직 경험이 조금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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