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말이 되면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기업가들과 정치인, 지식인들은 고급 리조트가 밀집한 스위스의 휴양지로 총집결한다. 모임의 목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 올해 49회째를 맞은 다보스포럼 얘기다. ‘사람 중심의 세계화’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기회 균등’ ‘빈곤 철폐’ 등등 새해 벽두부터 포럼은 희망의 청사진을 쏟아낸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논설주간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엘리트 독식사회’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엘리트들의 노력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2011년 초당적 싱크탱크인 아스펜 연구소의 펠로우로 선정되면서 엘리트들의 내부 모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목도한 엘리트들의 민낯은 세상의 구원자가 아니라 불평등을 뿌리째 심는 공범이었다.
저자는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세계를 ‘마켓월드’라 칭했다. 이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까지나 자본과 비즈니스다. 마켓월드의 엘리트들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진보, 개혁, 기술 혁신을 입에 올린다. 사회적 기업, 임팩트 투자, 공유경제 등은 이들이 만들어낸 마켓월드 표 대안들이다. ‘힘 있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힘없는 사람에게도 가장 좋다’는 윈윈 전략은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논리다. 보통사람들은 다 같이 잘살자는 데 설득당한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엘리트들은 자신을 포함한 승자들의 이익은 절대로 사수한다. 소수에게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다수의 궁핍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저자는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마켓월드의 엘리트가 제시하는 대안은 사소하다. 복잡한 구조에는 눈감은 채 단순한 아이디어로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하려 든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업체가 만든 대출 애플리케이션 이븐은 수익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매달 일정한 금액을 보전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수수료도 내야 하고, 빌린 돈도 갚아야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븐이 매달 채워 주는 통장 잔고에 안도한다. 안정적 일자리와 적정 수준의 임금을 촉구하는 공적인 요구는 잊은 채 말이다. 기업가들이 자사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 주는 대신 공공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지어 주는 것도 수익 분배의 요구를 틀어막기 위해서다. 저자는 “마켓월드의 엘리트들은 정치적인 것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꼬집었다.
희망만 설파하며 대중을 호도하는 ‘지식소매상’들의 기만도 문제다. 저자는 대표적인 인물로 토머스 프리드먼, 니얼 퍼거슨 등 세계적 석학을 저격한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결코 가해자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누군가 책임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어렵고 논쟁적인 비판은 피하고 명쾌한 대안만 제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문제 제기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려는 의도다.
엘리트 독식사회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지음ㆍ정인경 옮김
생각의 힘 발행ㆍ424쪽ㆍ1만8,000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심과 행동이다. 인자한 부자, 낙관주의 지성인들에 속지 말고 보통 사람들 스스로 변화의 방안을 모색하자고 강조한다. “세상을 진짜 변화시키고 싶다면, 선을 늘리는 것보다 악에 도전해야 한다. 오인을 조장하는 신화를 간파할 때부터 진정한 개혁은 가능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