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도심 내 빈민촌 풍경. 집 아래 강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안타라통신 캡처

“자카르타 중심부의 탐린 거리 일대는 싱가포르를 닮았다. 그러나 좀더 북쪽의 탄중프리옥에 도착하면 우리는 방글라데시를 마주한다.”

특정 국가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만 덜어낸다면 인도네시아 정계 유력인사의 저 말은 사실에 부합한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계 어떤 나라의 수도에도 뒤지지 않는 마천루와 대형 몰이 즐비한 첨단 도시인 반면, 쓰레기더미와 악취가 생존을 위협하는 빈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차량2부제를 피해 화려한 도심의 대로를 벗어나면 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든 공간 사이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런 현실을 뒷받침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사 결과가 6일 발표됐다. 인도네시아 국토부 관계자는 “세계은행과 함께 자카르타 267개 지구를 실사한 결과, 118개 지구에 빈민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자카르타의 절반 정도가 빈민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타는 초고층 빌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활용도는 불평등했고, 많은 사람들이 땅이 없어서 남의 땅에 그냥 들어와 살고 있었다. 특히 강 주변에 빈민가의 절반이 위치해 있었다. 자카르타엔 13개의 강이 흐르는데, 우기 때 홍수 피해가 잦고 쓰레기 무단 투기가 심해 강변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온갖 질병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자카르타 시내 빈민촌을 지나가는 통근 열차. 집들이 철로와 바짝 붙어 있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자카르타의 빈민촌은 도시 전역에 포진해 있었다. 북부 자카르타 39%, 서부 자카르타 28%, 남부 자카르타 19% 동부 자카르타 12%, 중앙 자카르타 11%, 천섬(1,000개의 섬) 일대 1% 순이었다. 북부 일대는 해수면 상승으로 가장 먼저 가라앉고 있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빈민가 주민들을 강제 퇴거 조치하지 않고 현재 주거 지역에서 토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일률적인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마다 각각의 문제를 살펴보고 맞춤형 전략을 쓰는 식이다. 자카르타 지방 정부 역시 주지사가 직접 지휘하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빈민촌 주거 환경 개선, 필수 인프라 제공, 토지 분쟁 조정 등에 나설 계획이다.

정작 자카르타의 빈민 인구는 며칠 뒤면 또 한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들의 설 연휴라고 할 수 있는 르바란(Lebaran)이 9일 끝나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에 살던 이들은 르바란 때 고향에 내려가 가족이나 친척, 친구, 지인 등을 한두 명씩 자카르타로 데리고 귀경하는 경향이 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한 ‘르바란 이촌향도’인데, 이들이 처음 정착하는 곳은 주로 빈민촌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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