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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헬기 탑재한다던 이즈모, 항모로 개조 본색

입력
2019.06.06 17:00
수정
2019.06.06 19:0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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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최대 규모 함정인 이즈모 헬기 탑재 호위함. 자료사진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최대 규모 함정인 이즈모 헬기 탑재 호위함. 자료사진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한다”

지난해 12월 일본이 ‘방위계획 대강(방위대강) 개정안’을 발표한 데 따른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반응이다. 원체 험악한 중일관계를 고려하더라도 외교 석상에서 사용한 가능한 표현을 총동원한 거친 항의였다. 한국 외교부도 “일본의 방위ㆍ안보정책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주변국 반발을 산 일본 방위대강의 핵심은 “단거리 이륙ㆍ수직착륙기(STOVL기)의 탑재 체계를 구축해 비행장이 적은 태평양 지역에서의 대처 능력을 강화한다. 필요한 경우 함정으로부터의 운용이 가능토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한다”는 구절이었다. 여기서 단거리 이륙ㆍ수직 착륙기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도입할 예정인 F-35B 전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 함정으로부터 운용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일본이 보유한 2척의 대형 호위함인 ‘이즈모(出雲)’와 ‘가가(加賀)’를 F-35B 전투기 발진이 가능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겠다는 뜻이었다. 일본제국주의 시절 항공모함 대국이던 이 나라가 그 동안 주변국 반발을 의식해 쉬쉬했던 항공모함 보유 계획을 슬그머니 공식화한 셈이었다.

설계 때부터 F-35B 탑재 염두

2006년 이즈모 기본설계 구상이 공개됐을 때 일본은 헬리콥터 5대가 동시 이착륙할 수 있는 다목적 수송함이라고 주장했다. 이즈모에는 실제로 전통적 의미의 항공모함이 갖춘 ‘착함 구속 와이어(arresting cable)’와 ‘전투기 이륙에 필요한 증기 사출장치(steam catapult)’가 없다.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F-35B 전투기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투기 이륙 시 양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긴 활주로가 없는 반면 격납고와 갑판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만 있으면 중형급 항공모함으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F-35 스텔스기를 13대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105대를 더 구매하기로 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 계획대로라면 10년 내에 F-35A 105대, F-35B 42대 등 총 147대의 F-35운용 국가로 거듭난다.

실제 이즈모는 애당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F-35B 탑재를 염두에 두고 건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설계 과정에 참여했던 해상자위대 간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갑판과 함내 격납고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F-35B 크기에 맞춰 설계됐고, 도료 역시 F-35B 이착륙 시 분사되는 섭씨 500도에 가까운 열을 견딜 수 있는 제품을 발랐다는 것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연구소(IISS)의 닉 차일드 해군전력 담당 선임 연구원은 “동아시아 지역 군비경쟁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일본의 이즈모 개조는 언제 시작할 것이냐의 문제였지, 개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도쿄 남부 요코스카 자위대 해상기지의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함에 승선을 마친 후 아베 총리와 인사를 하고 있다. 요코스카=로이터 연합뉴스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도쿄 남부 요코스카 자위대 해상기지의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함에 승선을 마친 후 아베 총리와 인사를 하고 있다. 요코스카=로이터 연합뉴스

개조를 마친 이즈모급 함정은 최소 10대 이상의 F-35B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 전문매체인 플라이트글로벌은 “헬리콥터는 물론 F-35B 전투기 10대와 수직이착륙 수송기인 V-22 오스프리도 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각국 안보전략 분석 기관인 스트래트포와 플라이트글로벌은 “이즈모급 항공모함 보유로 일본의 해상ㆍ공중 전력의 작전 유동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토 방어에 초점을 둔 게 기존의 안보 전략이었다면, 이즈모급 항공모함은 일본 공군 전력의 작전 반경을 동중국해로 확장시켜 줄 것이란 뜻이다. 또 이미 2차 세계대전 당시 대형 항공모함을 가지고 열강과 전쟁을 해본 ‘경험’도 이즈모급 항공모함 운용에 적절하게 투사될 수 밖에 없다.

중국 대적은 무리…미국 패권 유지의 ‘백업’ 역할

일부에서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이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려는 데 있다면, 굳이 한국이 그 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은 5만톤급 항공모함 랴오닝함 배치에 이어 7만톤이 넘는 001A함 완성을 앞두고 있다. 오는 7월 취역할 것으로 예상되는 002함에는 젠(殲)-15와 젠-15D 전자전 공격기, 즈(直)-18 헬기 등 함재기가 탑재된다. 2035년까지 랴오닝급 2척을 포함해 모두 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한다는 게 중국의 계획이다. 작전 능력에 대한 의문은 있으나 ‘규모’ 측면에서 중국의 해군력은 일본을 압도 하고도 남는다.

차일드 선임 연구원은 “이즈모가 중국의 ‘항모 킬러’에 어떤 대응 능력을 갖췄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북3성에 배치된 대함 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21D’는 지상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려 이동하며 900~1,500km 떨어진 해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어 미국 항공모함 전단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둥펑21D 탄도미사일. 신화통신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둥펑21D 탄도미사일. 신화통신

수직이착륙기 자체의 한계도 있다. 일본 군사력 전문가인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륙하는 데 연료가 많이 드는 특징 때문에 F-35B 작전 반경이 ‘중국의 동중국해 관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향후 이즈모급의 역할은 중국 해양력 팽창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군의 지원 전력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란 평가다. 이즈모와 가가는 지난 2년 간 중국의 군사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남중국해 일대에서 진행된 해상 훈련에 착실하게 참가해왔다.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열도 서쪽 공해 상에서 미국, 호주, 프랑스 해군과 대잠ㆍ헬리콥터 상호 발착 훈련을 진행했으며, 이 훈련 직전에도 남중국해에서 미국, 인도 필리핀 해군과도 해상 기동 훈련을 실시했다.

가가 역시 지난해 부터 인도는 물론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싱가포르 등과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미ㆍ일ㆍ인도ㆍ호주로 묶인 이른바 쿼드 블록(quad blocㆍ4각 동맹)’은 물론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는 이 지역 군소 국가들과도 손발을 맞추며 몸 풀기에 들어간 셈이다.

항공모함이 아니라 헬기 탑재 호위함이라고 우겨왔던 일본도 더 이상 이즈모급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을 국빈방문 중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지난달 28일 가가함에 오른 장면은 ‘항공모함 보유국 일본’의 역할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전례 없이 강한 미일동맹과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즈모급 함정이 “지역 공공재”로서 미일동맹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즈모가 미국의 해양패권 유지를 위한 든든한 백업이 될 것이란 뜻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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