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다세대 주택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전경. 코리아타임스 심현철 기자

내 사무실은 오래된 주택 사이에 있는 똑같이 오래된 주택이다. 동네 이름은 동자동이다. 나도 주소지를 보고서야 동자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암동, 갈월동과 맞닿은 아주 작은 동이다.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고 있는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비교적 임차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 이곳에 사무실을 얻은 것은 오래된 일식 가옥을 고쳐보겠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가성비도 한몫했다. 어느 날 경사로에 자리 잡은 이웃 빌라 반지하의 출입문을 헤아리다가 이 좁은 곳에 다섯 가구나 살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동네에는 끊임없이 방을 만들고 담을 늘려 확장한 희한한 집들도 많고 큰 집을 개조한 제조회사도 많다. 그들도 싼 임차료와 훌륭한 교통환경 때문에 이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오래된 집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에 대단위로 분양된 문화주택지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도 그때의 집이 다수 남아 있다. 시대를 지나며 개조에 개조를 거듭하여 형태만 겨우 짐작하는 집도 있지만 초기 모습을 알 수 있는 곳도 있다. 산책길은 쇠락하는 동네의 면면을 보게 된다. 오래전부터 재개발 예정지로 구획된 동네라서 집을 고치고 길을 청소하며 마을을 가꾸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몇 년 후면 모두 허물고 아파트를 지을 건데, 뭐하러 고치고 정성을 들이겠는가? 길 여기저기 보이는 생활 쓰레기는 큰 문제다. 안전등급 D등급을 받은 근처 아파트는 페인트칠만 새로 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간다.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 동네에 집을 고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일단 우리 사무실이 그러하다. 시한부 생명을 가진 집에 최소 10년은 써야 본전을 찾을 단열 성능이 좋고 비싼 창호를 설치했다. 산책 코스에 있는 집들도 여러 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명태찜을 팔던 식당은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다 뜯어 고쳤다. 뭐가 들어오려고 이런 동네에 투자를 하나 궁금했는데 멋진 프렌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내부도 성실하게 고쳐서 허름한 식당이 이렇게 변신했구나 놀랐다. 동네 건축가 중 하나인 도시공감은 골목길 하나에 세 개의 집을 임차해서 공유공간을 만들었다. 서재, 거실, 주방을 주제로 꾸민 이 집들은 예약한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행사를 열곤 한다. 골목 안 석축 위에 놓인 일식 가옥은 동네가 잘 보이는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빈집으로 있었다. 어느 날 가림막을 치더니 뚝딱 집을 만들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람이 살게 되니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동네가 아니라, 굴곡진 골목길이 집과 집을 이어주는 사람 사는 동네였음을 일깨워 주었다.

가능한 만큼 투자하고 성실하게 고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고 있다. 살던 곳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은 비단 이 동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재개발 예정지라고 두 손 놓고 낡은 대로 방치하며 그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철거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날까지 이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삶은 물적 증거가 아니라 온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이다. 현재를 즐기면서 낡은 집을 매만지고, 마당을 가꾸고, 장사를 시작하고, 그렇게 사건을 만들면 된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옆 블록까지 들어온 거대한 고층빌딩과 골목길의 낡은 지붕이 겹쳐 보인다. 이곳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하지만 이 동네의 전성기는 왠지 지금 같다. 인간 냄새가 가득한 골목길이 있는 지금.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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