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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화가 보티첼리의 모델 베스푸치는 인간자본 '끝판왕'

입력
2019.06.08 04:40
수정
2019.06.22 20:1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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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비너스의 탄생’과 아름다움이라는 인간자본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1488), 우피치 미술관, 172㎝×278㎝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1488), 우피치 미술관, 172㎝×278㎝

서양 회화의 단골 모델 중 하나로 단연 미의 여신 비너스를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비너스’는 로마신화에서 불리는 이름이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이다. 비너스를 그린 작품으로는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4~1510)가 1488년경에 그린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 가장 유명하다. 요즘은 이 작품이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한 번은 어떤 식당에 갔더니 한쪽 벽면 전체가 이 그림으로 채워진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왠지 씁쓸했다. 왜냐하면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본 순간 예전에 이발소에 많이 걸려있던 밀레(Millet)의 그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티첼리도 밀레만큼 대중화 되어버린 느낌이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큰손, 메디치가

보티첼리가 활동하던 당시의 피렌체는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들은 상업과 무역이 번성하여 도시가 번창하고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부유한 계층의 시민계급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왕족과 귀족계층을 대체하는 문화소비 계층으로 성장하였다. 피렌체 곳곳을 둘러보면 유서 깊은 건물 앞에는 어김없이 6개의 구슬이 육각형 모양을 이루는 문장(紋章)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문장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부를 많이 축적했던 메디치(Medici) 가문의 문장이다. 메디치 가문은 의약품업과 무역, 그리고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형성했는데 메디치 가문은 축적된 부를 문화나 예술 분야에 투자하여 피렌체의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당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으며,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도 이 가문의 후원에 힘입은 바 컸다.

피렌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붉은 벽돌의 거대한 돔을 이고 서있는 성당 두오모(Duomo)를 찾는다.(두오모는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로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두오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가보아야 할 우피치(Uffizi)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르네상스 미술의 총체적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너스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비너스의 탄생’을 만날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도록 표지를 장식한 그림 역시 이 작품이니 우피치의 수많은 르네상스 회화 중에서도 으뜸으로 간주되는 작품인 셈이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역시 메디치 가문의 주문에 의한 것이다. 그는 또한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그리기도 했다. 당시 르네상스를 이끈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를 재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 그림 역시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보티첼리의 풍부한 상상력과 시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멋진 걸작으로 ‘탄생’ 되었다.

◇중세 도덕관 깨뜨린 최초의 누드화

이 그림은 비너스 탄생의 신화 이야기가 바탕이 된 작품이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져버리자, 그곳에서 거품이 일며 비너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사랑과 미의 여신의 탄생 이야기로는 좀 기이하다고 하겠다. 그림에는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조개껍질 위에 서있다. 왼쪽에는 바람의 신이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있고, 그 바람에 밀려서 해안가에 닿은 비너스에게 계절의 여신이 옷을 입혀주고 있다. 그런데 비너스와 바람의 신, 그리고 계절의 여신이 거의 같은 거리에 위치한 듯이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원근법 같은 기법에는 아직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비너스의 탄생’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장미꽃이 여러 송이 그려져 있다. 미술사에서는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장식물이나 소도구를 부속물(Attribute)라고 하는데, 이 그림에서 비너스의 부속물은 장미꽃이다. 장미꽃은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생겨난 꽃인 까닭이다.

이 작품은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최초의 누드화이다. 이때까지는 그리는 대상이 여신이라고 할지라도 누드로 그릴 수는 없었는데 보티첼리의 이 작품은 여신의 모습을 빌려 여인의 아름다운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당시로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화가들은 중세시대의 기독교적인 종교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실제 모습과 아름다운 육체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누드화의 등장은 육체를 죄악으로 여겼던 중세의 도덕관이 비로소 깨지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그림 속 비너스의 모델은 시모네타 베스푸치라는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미인으로서 메디치 가문의 한 사람이었던 줄리아노의 정부(情婦)였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또 다른 대표작 ‘봄(Primavera)’의 가운데 서있는 여인의 모습이나 ‘성모와 아기예수(Madonna della Melagrana)’에서 마리아의 얼굴이 비너스의 얼굴과 똑같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는 점이다. 즉, 같은 모델의 얼굴이다. 게다가 그 여인들 모두 얼굴의 각도가 약간씩 기울어져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미의 기준은 제각기 달라도

그러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사실 아름다움이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며,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환경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의 미인과 지금의 미인의 기준이 다르며, 현재에도 북한에서의 미인의 기준과 남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르누아르(Renoir)의 그림에서 보는 미인의 모습은 대체로 풍만한 체형과 곡선미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서 조선시대 신윤복의 그림 속 미인은 대개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에 소담한 체형을 보여준다.

그런데 경제학적으로 볼 때 분명한 사실은 아름다움도 하나의 자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의 여러 중요한 이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간자본(Human capital)이론이다. 이 이론은 베커(Gary Becker)와 민서(Jacob Mincer)에 의해서 60년대에 정립되었다. 인간자본이란 인간 자신에 대한 투자로 형성되며, 투자에 의해서 인간 내부에 ‘축적된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축적된 자본량은 증가하게 된다. 가령 교육은 인간자본 축적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교육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은 당연히 인간자본의 축적은 늘어나고 노동시장에서 그에 따른 임금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임금은 더 많이 축적된 인간자본에 대한 사용료(rent)이기 때문이다.

인간자본 중에는 교육과 같이 투자를 통해서 증가되거나 향상될 수 있는 요소도 있지만, 어떤 인간자본은 본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인간자본은 보통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을 본원적(intrinsic) 인간자본이라고 부른다. 지능의 경우가 이런 예이다.

◇성형산업 번성하는 경제학적 이유

그러면 인간의 외모(appearances)의 경우는 어떠한가? 인간자본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외모도 일종의 본원적 인간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형수술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좋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이런 투자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경제학적으로 보면 선천적으로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가 ‘비용 없이’ 이루어진 경우라고 간주된다. 따라서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은 이미 별다른 투자 없이 상당한 본원적 인간자본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로 좋은 외모와 노동시장에서의 취업이나 봉급 수준과의 연관성은 상당히 존재한다. 즉, 유의한 수준의 정(正)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여러 실증적 연구를 통하여 밝혀졌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취업을 앞둔 사람들이 성형수술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현상에서도 보듯이, 현실세계에서 경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외모나 용모란 고용주들이 구직자들의 ‘보이지 않는’ 생산성을 가늠할 때 확실하게 의존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시그널(signal)인 셈이다. 강남의 수많은 성형외과들, 그리고 이상형의 아이돌 얼굴을 닮은 몰(沒)개성의 젊은이들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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