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패션잡지 ‘보그’ 영국판의 표지에 세 아이 엄마인 슈퍼모델이 누드로 등장했다. 이는 경제가 나빠졌다는 신호다. 유행을 좇아 신용카드를 마구 긁어대던 젊은 고객층이 경기 악화로 구매력을 상실하고, 실질 구매력이 있는 엄마들로 패션산업의 주 고객층을 바꿨다는 것을 의미해서다. 다소 비약적이라 할 수 있는 이 분석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을 지낸 저명한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내놓은 것이다. 그는 숫자와 도표가 없이도 일상 곳곳에서 세계 경제에 관한 ‘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다고 밝힌다. 가령 늘 사 먹는 초콜릿의 포장은 똑같은데 개수가 줄었다면, 이는 초콜릿 생산 투입비가 올랐다는 얘기고, 이제 곧 생활비가 오를 것이라는 암시다. 저자는 “세상은 수학적 정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단순한 사건과 상황이 훨씬 경제를 잘 설명해 준다”고 강조한다.
시그널
피파 맘그렌 지음ㆍ조성숙 옮김
한빛비즈 발행ㆍ528쪽ㆍ1만9,500원
그러면서 그는 숫자에 집착해 본질을 놓치는 경제전문가에 기대지 말고 기민한 태도와 관찰력으로 일상의 신호들을 감지하고 주체적으로 반응할 것을 촉구한다.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보통은 세계 경제에 가장 무심한 사람들이 세계 경제의 요동에 가장 호되게 고통을 받는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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