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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윤 “미ㆍ중 무역분쟁은 헤게모니 싸움, 우리에겐 위기이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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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윤 “미ㆍ중 무역분쟁은 헤게모니 싸움, 우리에겐 위기이자 기회”

입력
2019.06.07 05:00
수정
2019.06.07 17:5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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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ㆍ국제경제 전문가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인터뷰]

지난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미중 무역전쟁 같은 대외적 요인으로 경기가 악화될 때는 재정건전성과 국제수지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지난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미중 무역전쟁 같은 대외적 요인으로 경기가 악화될 때는 재정건전성과 국제수지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미ㆍ중 무역분쟁이 세계경제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더 없는 악재다.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급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진다.

이른바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어떻게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관가에서도 손꼽히는 국제경제 전문가 신제윤(61) 전 금융위원장을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미ㆍ중 무역분쟁이 세계경제를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초강대국은 늘 ‘2인자’의 부상을 꺼려왔습니다. 과거엔 물리적인 전쟁으로 굴복시켰다면 이제는 경제 쪽에서 ‘헤게모니(패권)싸움’으로 변주한 것입니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영국, 일본, 서독(독일)을 차례로 굴복시켰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성장이 미국을 위협했고,지금의 관세전쟁으로 나타난 것이죠.”

-두 나라의 관세 공방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요.

”관세부과는 과거 전쟁에 비유한다면 일종의 ‘소총전’입니다. 정작 서로 민감한 물품에는 관세 부과를 피하며, 대체 가능하거나 재고가 쌓인 품목들에만 하고 있습니다. 타협의 여지를 두는 거죠.미국이 중국의 모든 수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얘기는 하지만 그건 어려울 걸로 봅니다.”

-왜 그렇게 보시는지요.

“관료시절 미국 재무부나 국무부를 상대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헤게모니 유지라는 점입니다. 그 핵심은 돈과 정보의 흐름을 장악하는 것이죠. 돈의 흐름은 기축통화(달러화)와 지급결제시스템을 통해 장악했습니다. 다만 정보의 흐름은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까지 부추겨 중국 화웨이에 강한 제재를 유도하는 것도, 화웨이가 정보 흐름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데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관세부과 형태의 무역분쟁이 치열한 전쟁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아닌 것이죠. 문제는 분쟁이 길어지고 확대될 때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떤 것입니까.

“양국 간 수출통제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희토류, 미국은 반도체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가장 큰 약점이면서, 타격이 클 수 있죠. 제일 두려운 확전은 화폐전쟁입니다. 화폐전쟁은 실물 영역의 분쟁이 금융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세계 금융시장을 폭삭 주저앉히는 충격을 입힙니다. 특히 우리 같은 신흥국들이 직격탄을 맞고 이 충격이 다시 촉발제가 돼 세계적인 침체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사실 직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다만 양쪽의 네트워크를 통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을 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국무부나 재무부,중국의 상무부나 외교부 쪽과 연결해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느냐가 현재로서는 핵심입니다.”

신 전 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킨 인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으로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안전판을 이끌어냈다. 또 2011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의 산파 역할도 했다.

-미중 간의 고래싸움에선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과 연대도 중요해 보입니다.

“통화스와프 체결, G20, 아세안+3같은 국가간 정보교환, 네트워크 구축, 공동 대응의 장을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호주, 싱가포르가 우리와 처지가 비슷해 보입니다. 이런 나라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국력으로 봐서 (현 정부가 가입을 주저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등 웬만한 국제기구엔 무조건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미중 간 갈등 와중일수록 다자간, 중립적 협의체에 가입해서 영향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만신 전 위원장은 현재 우리 정부의 국제업무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열리는 G20회의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가지는 주제가 하나도 없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죠.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이 많이 오는데 연합ㆍ공동대응도 전혀 없고, 단지 참석에 의의를 두는 것처럼 보여 매우 안타깝습니다.”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 정부에 노동생산성을 올려야 한다고 권고한 데 대해 "OECD가 노동 투입 측면에서 성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지난 정부부터 지속해 온 규제 혁신이 실패한 결과”라며 “그만큼 노동에 자극을 주지 않았고, 기존의 틀 안에 안주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영권 기자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 정부에 노동생산성을 올려야 한다고 권고한 데 대해 "OECD가 노동 투입 측면에서 성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지난 정부부터 지속해 온 규제 혁신이 실패한 결과”라며 “그만큼 노동에 자극을 주지 않았고, 기존의 틀 안에 안주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영권 기자

-최근 우리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한국의 수출은 국제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미중 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죠. 그러나 미중 갈등이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아닙니다. 미중 갈등은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조건입니다. 경제는 100% 좋은 것도 100% 나쁜 것도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기회 요인을 찾아야죠.”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가령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는 과정에서 지적 재산권이나 서비스업 개방을 하거나, 반도체 굴기(屈起)가 타격을 입는다면 우리에겐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화웨이를 봉쇄하면 인텔 같은 전자업체와 협력할 수도 있고요. 시나리오 별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국제적인 정보 취득과 공조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도입 때가 떠오르네요.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있을까요.

“일방을 편 들 수 없는 민감한 이슈일수록 신중하게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이 매우 경계했지만 영국, 독일이 가입하면서 한국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슬기롭게 넘어간 사례죠.”

-원화가치가 올해 6%나 떨어졌습니다. 환율 안정을 위해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할 때 아닐까요.

“제일 강력한 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일텐데 지금 미국은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보조금을 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와의 통화스와프를 확대할 경우 자칫 ‘한국이 어렵나보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죠. 지금 외환은 우리의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피합니다.”

-그래도 외환보유고는 넉넉한 편이지 않나요.

“4,000억달러가 넘으니 급한 위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해외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는 경상수지와 재정건전성이죠. 한국은 남북문제로 인한 불안에다 자원이 없는 국가여서 신뢰를 줄 다른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마침 재정건전성이 요즘 이슈입니다. 최근엔 국가채무비율 40%가 논란이 되는데요.

“당장의 숫자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재정투입을 확대한다고 공무원을 늘리는 건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고 봐요. 재정의 준칙을 정해서 국민을 설득해 가야 하는데, 지금은 저출산 고령화가 겹쳐서 재정건전성이 지속될 지 언제든 의문을 살 수 있습니다. 정권 임기가 5년이어서 장기적인 계획을 짜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신 전 위원장은 정부가 재정을 너무 쉽게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극복이 가능했던 것은 재정이 뒷받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믿음에 물음표가 붙습니다.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 전기료도, 버스 요금도 재정으로 메운다고 하는데, 한 번 주기로 결정한 건거두기 어렵습니다. 이것저것 모두 국가가 책임 져야 된다는 식으로 가면, 민간의 입지가 갈수록 위축됩니다.”

2015년 금융위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신 전 위원장은 최근 공무원의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입법부의 힘이 비대해졌지만, 이를 핑계로 공무원들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질타도 덧붙였다.

-경기악화, 사회 갈등 해결에 ‘정부가 안 보인다’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모든 세세한 내용까지국회에서 법으로 결정하니 중요한 아이디어나 민원을 받아도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소요됩니다. 지금처럼 여야가 정쟁에 매달리면 아무 일도 진척되지 않죠. 대부분 사안이 국회로 가면 정치화 되고, 그러는 사이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입법이 막혀 개혁이 되지 않는 것이죠.”

-정부의 입지가 크게 줄었다고 절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관료들이 경제성장이나 사회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종도 신공항이나 쓰레기 봉투 도입 같은 좋은 정책이 이제는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실제 정부도 모든 것을 국회로 미룹니다. 입법부의 시녀가 된 것이죠. 그렇다 보니 공무원들이 패배주의적, 보신주의적 사고를 하고요. 그 많은 세금으로 월급 주고 노후보장 해주고 정치적 중립 보장하는데, 책임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패기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참 답답한 상황이죠. 공무원들이 이러는 한 미래가 밝지 않습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34년간 경제관료로 재직하며 은행 증권 보험 등 국내금융과 외환 통상 등 국제금융 업무까지 두루 거쳤다. 1998년 외환위기, 2004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대형 악재를 최일선에서 맞서며 ‘위기 해결사’ 역할을 했으며 2013~2015년 금융위원장, 2015~2016년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 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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