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마음 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 조금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어요.”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이후 뇌종양 진단을 받아 투병해온 한혜경(41)씨는 산업재해 신청 10년 만에 인정을 받게 되자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5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한씨가 지난달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씨는 지난 1995년 11월부터 2001년 7월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 모듈과에서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재직 기간 동안 한 씨는 인쇄회로기판(PCB)에 전자 부품을 납땜하는 전자제품조립공정(SMT)에서 납과 플럭스, 유기용제 등에 노출됐다. 재직 중 생리가 중단되는 등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껴 퇴사했는데, 퇴사 4년 이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뇌에 손상이 생겨 지체장애, 보행장애, 언어장애 1급이 됐다.
한씨의 싸움은 지난했다. 2008년 반올림에 피해를 제보한 후 2009년 근로복지공단에 처음으로 산재를 신청했으나 승인되지 못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심사, 고용노동부 재심사를 거쳤지만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행정소송(2013년 1심, 2014년 2심, 2015년 3심)도 모두 졌다. 이후에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신청을 했지만 또 불승인 처리됐다. 그러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또다시 재심의를 신청했고 8번째 도전 끝에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위원회는 판정서를 통해 △2002년도 이전의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충분치 않았던 점 △신청인이 업무를 시작한 시기가 만 17세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유해요인에 노출됐다는 점 △신청인이 업무를 수행한 1990년대의 사업장 안전관리 기준 및 안전에 대한 인식이 현재보다 낙후돼 보호 장구 미착용 및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반올림 측은 “근로복지공단이 비록 최초신청 당시 소송에서 (한씨를) 이겼으나, 당시 불인정 결정의 부당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입장을 바꿔 승인한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며 “산재보험의 취지가 사회적 부조인 만큼 앞으로는 그리 어렵게,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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