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국빈 방문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렁에 빠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문제에 개입하며 ‘브레시트 메이커’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두고 갈라진 영국의 내정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데다 영국 사회복지의 상징인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시장 개방 대상으로 거론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는 이뤄질 것이고, 이뤄져야 한다”며 지지 의사를 재확인하면서 브렉시트 후 영국과 놀랄만한 양자 무역 협정 체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간 무역 협정이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보다 교역 규모가 2~3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렉시트 합의안의 의회 통과에 실패해 사임 의사를 밝힌 테리사 메이 총리를 이을 차기 총리 후보군과도 두루 접촉했다. 그는 이날 브렉시트 강경론자로서 유력 총리 후보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과 20분 동안 통화를 가진 데 이어 영국 주재 미국 대사관저에서 나이젤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 보수당의 이안 덩컨 스미스 전 대표, 오언 패터슨 전 환경부 장관 등과도 만났다. 덩컨 측 대변인은 “브렉시트를 포함해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고, 패라지 대표는 “그는 다음 보수당 대표와 총리가 누가 될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차기 총리 후보군에 대한 평가도 서슴지 않아 ‘영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데 국빈 방문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보리스를 안다. 그를 좋아한다”며 “(총리가 되면) 매우 잘할 것”이라고 존슨 전 장관을 지지한 반면, 그의 라이벌인 마이클 고브 환경 장관에 대해선 “마이클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자신을 비판해온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에 대해선 “그는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도 존슨 전 장관을 차기 총리로 추켜세우고 EU와의 협상에는 패라지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내정 간섭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무역 협정에 NHS도 대상이 되느냐는 질문에 “모든 것이 테이블에 올라 갈 것이다”고 말해 거센 반발을 낳았다. NHS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보건ㆍ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1948년 도입된 영국의 대표적 사회보장제도다. NHS가 무역 협정에 포함돼 의료 시장이 개방되면 결국 영리 시스템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비판론자들의 우려다. 이에 코빈 노동당 대표는 트위터에 “우리의 NHS는 판매용이 아니다”고 비판했고 보수당의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도미닉 라브 전 브렉시트부 장관도 “NHS는 판매용이 아니며 내가 총리가 되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파장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이후 이뤄진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는 NHS에 대해 “협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입장을 바꿨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접근법이 영국의 우려를 잠재우지 못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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