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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에 지은 태일이 집… 빚진 마음 조금 덜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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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에 지은 태일이 집… 빚진 마음 조금 덜어냈죠”

입력
2019.06.07 04:40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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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기념관이 국내 처음 문을 열었다. 노동권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모범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기념관이 국내 처음 문을 열었다. 노동권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모범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벅차죠. 빚진 마음을 조금 덜어낸 기분이에요.”

지난 달 28일 만난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새로운 노동의 세상을 알게 됐다. 그 정신을 본받아 살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4월 30일 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관장을 겸하게 됐다. 임기는 3년. 같은 기간 전태일재단이 기념관을 위탁운영한다.

“내년이면 전태일 50주기인데, 여러 정치적 이유 등으로 기념관 하나 없었어요. 서울 시내에 번듯한 ‘태일이의 집’이 생겼으니 뿌듯하죠.” 이 관장과 전태일은 1948년생 동갑. 그에게 ‘태일이’는 한 번도 만나 본적 없지만 평생 그리워한 친구다. ‘전태일이 분신한 1970년에 뭐 하셨냐’는 질문에 주경야독이란 말이 돌아온다. 22살이었던 1970년, 그는 대학 3학년생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근로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그에게 은사는 모교에 비정규직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이 관장은 학교 행정직원으로 일하며 야간 대학에 다녔다. “당시 한일회담이다 삼선개헌이다 해서 사회적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런 사안에 관심 가질 형편도,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안됐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가기 바빴죠. 지방에 살았는데, 서울만큼 사회운동이 활발하지도 않았고요.”

전태일기념관 초대 관장을 맡게 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홍윤기 인턴기자
전태일기념관 초대 관장을 맡게 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홍윤기 인턴기자

이 관장이 전태일을 만난 건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83년이다. 어렵사리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아 서울로 터를 옮긴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때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전태일 평전’이 막 한국어로 나왔다. 한데 “알음알음 돌려 본” 그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건 열악한 노동현실이 아니라 “혼자 고민하고 혼자 애쓰고 최선을 다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단다. “그 즈음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이 노동판을 넘어 학교로도 들어왔어요. ‘학교도 현장’이고 가르치는 것도 노동의 한 범주란 인식에서죠.” 전태일 평전과 새 준거집단을 만나면서 이 관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조직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태일이’와의 개인적인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또 아이러니하게도 ‘태일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다. 전태일재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후 재단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됐고, 재단은 민주노총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일반에 얼굴이 알려진 이 관장에게 이사장직을 제의했다. 2015년 이사장이 된 그는 얼마 후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아갔다. 이 관장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보궐선거에서 유시민, 김혜경, 남윤인순 등과 함께 야권단일부호로 출마한 박 시장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노동중심특별시’를 내세운 박 시장은 노동복합공간 구축을 구상하고 있었고, ‘전태일 관련 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이 관장을 말을 듣고 이 건물을 전태일을 기리는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기로 했다. 시민공모를 통해 센터 이름을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으로 낙점했다.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연면적 1,920㎡ 지상 6층 규모로 조성된 기념관은 1~3층을 노동 관련 전시와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4층에는 소규모 신생노동단체의 공유 사무실 ‘노동 허브’, 5층은 서울노동권익센터, 6층은 기념관 사무실이 들어섰다. 현재 노동허브 입주 단체를 공모하고 있다. 이 관장은 “근처 평화시장, 전태일이 분신한 전태일다리(버들다리)가 있다. 이곳까지 이어지며 노동사를 소개하는 ‘전태일 루트’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2일까지 누적 방문자 수는 8,099명. 앞으로 서울교육청과 연계해 60학급을 교육할 예정이다.

때마침 이 관장의 에세이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걷는사람 발행)도 최근 나왔다. 원고지 15매 내외 분량의 산문과 시를 묶은 책에는 이 관장이 저 주경야독시절의 이야기부터 전태일과의 인연, 노동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등이 담겼다. 이 관장은 “편집자 의견을 많이 반영해서 원고의 3분의 1은 버렸다”며 “책 묶으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됐다. 반성문, 회고록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전태일 분신 후) 반세기가 지났잖아요. 달라진 노동환경에서, 달라진 세대에게 전태일과 노동운동을 어떻게 알릴 지가 숙제처럼 남았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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