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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의원 단 2명… 한국정치 ‘청년 결핍증’

입력
2019.06.07 04:40
수정
2019.12.10 12: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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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젊은 정치] <1> 여의도는 YB 불모지대

“미래 여성지도자 양성한다면서 당이 맡긴 첫 임무가 전대 꽃순이”

청년을 선거에 구색 맞추기용으로… 4년마다 한번씩 반짝 러브콜

5060 정치 엘리트 ‘독점 서클’ 깨야 소수ㆍ약자 대변하는 국회 가능

국내 인구의 28.7%(1,467만명)를 차지하는 2030세대. 국회의원 300명 중 이들을 닮은 만 39세 이하 의원은 그러나 단 2명(0.6%)뿐이다. ‘연령 55.5세, 재산 41억원, 학력 대학원 졸, 전직 국회의원, 남성’으로 요약되는 20대 국회의 불균형한 정체성은 국민의 대의기구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본보가 최근 만난 45인의 정치인, 정당인, 활동가들은 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년을 닮은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홍인기 기자.
국내 인구의 28.7%(1,467만명)를 차지하는 2030세대. 국회의원 300명 중 이들을 닮은 만 39세 이하 의원은 그러나 단 2명(0.6%)뿐이다. ‘연령 55.5세, 재산 41억원, 학력 대학원 졸, 전직 국회의원, 남성’으로 요약되는 20대 국회의 불균형한 정체성은 국민의 대의기구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본보가 최근 만난 45인의 정치인, 정당인, 활동가들은 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년을 닮은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홍인기 기자.

# “한 대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어요.”

이지현(43) ㈜공유정치 대표의 말이다. 그를 만나 바른정당(현 바른미래당) 시절 인재 양성 프로그램 ‘청년정치학교’를 제안한 이유를 물은 참이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두 차례 서울시의원을 지낸 그는 2017년 시작된 이 교육과정을 처음 고안, 제안서를 올린 인물이다. 작년까지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교육 운영도 맡았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기억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갔다.

“당내 여성청년 조직장을 맡았을 때, 저희에게 떨어진 첫 임무가 전당대회에서 꽃순이를 하라는 거였어요. 꽃순이를 하고, VIP실 응대를 하고, 당 행사 진행요원을 하는 게 역할이었던 거죠.” 두드려 맞은 기분의 이유다. 해당 조직 본령은 미래 여성 지도자 발굴, 양성이었다. 이 대표는 “정말 이건 바꿔야겠다고 생각해 동원 기능보다 정책 제안을 하려 노력했다”면서도 “일부의 움직임이었기에 30대 동안 정치권에 머물면서 늘 한계를 절감했다”고 했다.

“한 번도 보수의 이념이, 철학이, 역사가, 미래가 무엇인지 서로 가르쳐주고 토론한 기억이 없었어요. 미 연방 하원 인턴이나, 정치학 전공을 했을 때 기억으로 혼자 찾아 공부할 뿐, 그런 부재에 대한 갈증이 항상 숙제로 남았죠. 왜 우리는 상대에 대한 강한 반발로만 뭉치는가. 왜 이 안에서 청년들은 ‘쓰고 버려진다’고 느끼는가.”

# “많이 들은 건, 애들이 뭘 아냐는 말이죠.”

안상현(36) 안씨막걸리 대표의 기억이다.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였던 그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잘나가는 벤처기업 20대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영입제안을 받고 사직 후 2012년 입당했다. 당은 청년후보 공모 ‘락파티’를 거쳐 청년 4명을 당선권에 공천하겠다고 했다. 기대와 달리 이 4명은 순번발표 시점에 안정권 2명, 가능권 2명으로 분산 배치됐고, 결국 2명만 등원했다. 안 대표는 비례 순번 28번이었다. 총선 후 별안간 백수가 됐다.

그는 “정치의 속성이 원래 그러하니, 있을 수 있던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상황을 제어할) 가치기준이 없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일각의 속내를 안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다. “몇 달 뒤, 그 락파티의 한 심사위원이 사석에서 그러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데려다가 뭘 하는 건지. 애들 데리고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애’들이 국회의원 하면 안되지’라고.”

청년에 의한 정치도, 청년을 위한 정치도 드문 현실은 우연의 결과였을까. 정치권에서 ‘청년’ 소리깨나 들어본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노(NO)!’다. 한국일보는 창간기획 ‘스타트업! 젊은 정치’를 통해 우리 정치권이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우선 젊은 정치인, 정당인, 활동가들을 두루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말을 분석했다. 지금 우리 사회 의사결정 구조에서 열외 된 이들은 누구인가. 청년 김용균, 청년 김지영 몫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젊은 정치 신인들의 정치권 진입을 봉쇄하는 철옹성 같은 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그 첫 대답은 이랬다. “정치권이 지금처럼 정치하려는 청년을 동원하고, 장식하고, 소비하는 한 변화는 요원하다.”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하에서는 정당을 통한 청년들의 정치 입문이 쉽지 않다. 사진은 2014년 국회.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하에서는 정당을 통한 청년들의 정치 입문이 쉽지 않다. 사진은 2014년 국회. 한국일보 자료사진.

◇ 기득권 연합은 청년을 ‘동원’만 했다

인터뷰 대상은 모두 45명으로 각 정당의 젊은 전ㆍ현직 의원과 후보, 당직자, 시민사회 활동가까지 다양하다. 이들에게 국회 대표성에 관한 생각, 본인이 마주해 온 장벽, 해결 방안 등을 물었다. 청년 세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의 존재 여부와 가능성도 질문했다. 이후 분석에 동의한 인터뷰 텍스트(33만자ㆍ8만2,000단어ㆍA4 200쪽 분량)를 빅데이터 기반 컨설팅 기업 아르스프락시아와 함께 들여다봤다.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와 단어 간 연결 강도(의미 연결망)를 지도로 그렸다. 정치 지망자,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 현실과 경험을 얘기할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방법이다.

빅데이터 기반 컨설팅기업 아르스프락시아와 한국일보가 분석한 '젊은 정치'의 장벽.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빅데이터 기반 컨설팅기업 아르스프락시아와 한국일보가 분석한 '젊은 정치'의 장벽.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인터뷰 동안 등장한 단어 ‘청년’과 논리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된 단어들은 ‘비정규직’, ‘다양’, ‘계층’ ‘정체성’ ‘공감’ ‘감수성’ ‘서울’ 등이었다. 인터뷰 전반의 내용과 함께 살피면,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등 실존의 문제가 청년 세대를 둘러싼 중요 화두이며 동시에 다양한 계층, 정체성, 감수성이 정치의 영역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도드라졌다.

이처럼 청년 세대의 기본 생존과 존엄문제가 정계에서 외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인터뷰 곳곳에 흐른다. “나이가 어리면 무조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 것이라고 보는 시대, 즉 세대가 계층이 된 시대다, 비정규직 초단기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안전망이 부재한 시대다.”(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 “당사자만이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5060 남성 엘리트를 과대(過大) 대표하는 국회에서 이 문제가 홀대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김푸른 전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단어 ‘서울’은 각종 정치 간여 기회가 서울을 중심으로만 열려 있는데다, 청년을 위한 대책 등이 나오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대학생 중심의 해법이기 일쑤라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청년생태계라는 것도 서울에만 집중 돼있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청년들이 서울로 빨려 들어오고, 지역 단위 청년들은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송유현 서울대학생유권자센터 부대표)

의미망 지도의 우측면. 단어 '청년'을 중심으로 왼쪽 하단에 도드라진 단어 '동원'이 눈에 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의미망 지도의 우측면. 단어 '청년'을 중심으로 왼쪽 하단에 도드라진 단어 '동원'이 눈에 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주목할 또 다른 대목은 청년과 직접 연결된 단어 ‘동원’이다. 실제 각 인터뷰에서 정당들이 당내 청년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반복됐다. 당 내 청년은 “우리 당이 이렇게나 청년을 생각하고 위한다”는 선전이 필요할 때, 후보 옆에 설 앳된 얼굴이 필요할 때, 당대표 곁에서 화기애애하게 웃을 박수부대가 필요할 때 불러다 쓰는 도구라는 취지다. 강조한 정도가 달랐을 뿐 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인터뷰 대상자가 각자 사용하는 표현만 ‘장식품’ ‘액세서리’ ‘병풍’ ‘들러리’ ‘전위대’ 등 10여개에 달했다. “당내 청년위원회 활동을 하는데 맨 처음엔 피켓을 주다가 너무 연차가 차니까 깃발을 주더라. 대선 주자가 오면 청년들이 죽 서서 연호하다가 끝나면 ‘밥 먹으러 가자’하는 게 끝이다. 피켓 들기에도 너무 나이가 차면 그야말로 할 게 없는 거다.“(익명)

의미 지도에 비슷한 맥락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이미지’ ‘나이’ ‘생물학’ ‘호명’이다. 평소엔 이용만 하다가 단지 필요할 때, 누구든 구미에 맞고 단지 나이가 어린 ‘생물학적 청년’을 호명해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청년 세대의 정치적 열망을 퇴색시킨다는 지적을 반영하는 패턴이다.

“당내 청년의 풀(pool)은 줄었는데 선거 때 급하게, 몇몇 프로그램에 의해 일부 청년 정치인이 간택되고 그 중 누군가 잘해내지 못하면 유권자들이 실망하고, 그 상태 그대로 4년에 한 번씩 불러낼수록 청년의 정치라는 행위가 마이너리그, 2부 리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익명)

의미망 지도의 좌측면. 남색 단어들의 연결 고리에는 인터뷰이들이 간절히 바라고 원했으나 부재했던 것들이 자리했다. 민주주의, 시스템, 양성, 육성, 교육, 변화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의미망 지도의 좌측면. 남색 단어들의 연결 고리에는 인터뷰이들이 간절히 바라고 원했으나 부재했던 것들이 자리했다. 민주주의, 시스템, 양성, 육성, 교육, 변화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 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 “징징대지 말고 쟁취하라고?”

의미분석 지도에서 보라색 단어의 네트워크는 인터뷰 참여자들이 ‘원했지만 부재했던’ 요소들을 드러낸다. ‘민주주의’ ‘시스템’ ‘육성’ ‘양성’ ‘교육’ ‘변화’ 등이다. ‘민주주의’와 ‘시스템’의 부재는 공천 룰이 무시되거나 동원과 이용 시도가 이어져도 젊은 당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한다. 계파 패권주의나 인물 중심의 보스 정치가 정당의 기본 운영원리로 기능하는 가운데, 세가 약한 청년조직이 누군가의 눈 밖에 날 각오로 적극 항의하고 직격탄을 날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뭉치긴 어렵고, 흩어지긴 쉬운 청년의 일시적 정체도 이런 세 규합의 어려움에 한몫 한다. “청년의 정체성을 앞세워 정치하려는 시도는 사실 엄청난 위험부담을 내재한다. 누구나 영원한 청년일 수는 없지 않나.”(익명)

다른 당사자 운동처럼 지지세력이 존재하기도 어렵다. 모든 세대가 그렇듯 청년의 이해관계 역시 하나로 규합되지 않고 한 지역구에 정주하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도 힘든 탓이다. 거시적 정책의 궤를 벗어나 주거, 일자리, 복지 문제만 해결할 족집게 해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젊은 세대 몫의 목소리’를 위해 자신의 당내 입지를 좁히는 것은 도박 혹은 헛발질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견디는 자에게 복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선 당에서 (젊은 정치인이) 차근차근 성장할 터전 자체가 없고” 동시에 “인재의 발탁, 교육, 육성, 기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지적이 경청 되기보다는 ‘징징거림’으로 해석돼 왔다는 점이다. ‘선배’들로부터 “우리는 (정치권력을) 싸워서 얻었다. 너희도 징징대지 말고 투쟁해 얻어라”는 말을 누누이 들었다는 증언이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됐다. “내가 투쟁하던 20대 때(1980년) 너흰 뭘 했느냐”거나 “남들이 (법률가 혹은 사업가로) 성공해 당이 원하는 인재가 될 동안 너흰 뭘 했느냐”는 물음 앞에, 청년 당원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아연실색뿐이었다는 것. 인터뷰 참여자 상당수는 1980년을 전후로, 혹은 그로부터 수년 뒤에 태어나 ‘88만원 세대’로 불렸고, 여전히 저성장 시대를 통과 중이다.

굳이 정당이 유능한 정치인을 배출하고, 후보자를 검증해 공개 천거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투사의 혈기, 운동적 열정이나 성공신화로, 법률가로서의 행보로 스스로 정치적 검증을 통과할 수 있었던 ‘선배’들과 철저히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이런 훈계로 귀에 못이 박힌 탓인지, 전부 별개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청년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됐다. 첫째는 당 안팎의 조직이나 지방의회에서 조용히 행정 감사 능력, 입법 능력 등을 입증하며 힘을 키우는 ‘청년 자강론’을 강조하는 것,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독점적 룰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문을 한 목소리로 종합한다면 이렇다. “지금 청년들은 의석을 구걸하는 게 아니다. 정치권력 배분의 룰, 의사결정 구조 진입의 규칙이 철저히 잘못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 노동자, 성 소수자 등 청년을 포함한 여러 당사자가 함께 처한 공통 상황이다. 과연 지금 국회의 얼굴은 누구를 닮아 있는가.”

20대 국회의원은 누구를 닮아있나. 그래픽=송정근 기자
20대 국회의원은 누구를 닮아있나. 그래픽=송정근 기자
주요국 국회의원 40세이하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주요국 국회의원 40세이하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 누가 ‘독점 서클’ 덕을 보나

정당이 인재 발탁, 교육, 육성에 무관심했으며 그토록 심각한 문제라면, 이 대목은 왜 이제서야 문제가 되는 것일까. 정당이 굳이 체계를 갖추고 노력하지 않아도, 운동권이나 고시 출신으로 정치 신인을 수혈하고, 공천을 앞둔 인사 영입의 반짝 마케팅이 유효하게 돌아가는 구조가 굳어진 탓이라는 진단이다.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의 김세연 원장은 “기본적으로 인재 양성이라는 정당의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 구조가 없고, 당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하는 경로가 거의 막힌 상태”라며 “스스로 이렇게 성장한 경우가 드물다 보니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초반 혁신 과제로 손꼽힌 ‘원내정당화’가 조직으로서의 정당 기능을 약화시키고, 청년을 포함한 당원을 주변 존재로 떠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당 지도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국회의원 중심의 정당 운영을 하겠다는 본 취지를 살리기보다 당원과 당내 청년을 주변화하고 정치를 이미 원내에 진입한 소수 집단의 전유물로 전락시키는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의 가장 기본 기능인 정치 엘리트 육성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필요하면 선거 때 당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부 엘리트를 끌어다 당원으로 만들어 후보로 세우니 젊은 사람들이 커 나가거나 의사결정 구조에 진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꼬집었다. 그 결과가 ‘평균연령 55.5세, 평균 재산 1인당 41억원, 83% 남성’이라는 20대 국회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19대 국회의원 출신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엘리트 정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강한 변화의 의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지나치게 방치하며 정치 효능감을 떨어뜨려 온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라며 “서민, 중산층, 노동자 등 당사자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국회의 절반을 이뤄야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 덧붙였다. “진학률이 낮거나 문맹률이 높은 시대도 아니고, 국민이 국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시대가 아닌가요. 대다수 당사자는 심지어 이미 너무나 엘리트이기도 합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료:한국일보, 아르스프락시아>

이런 진단과 데이터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하나의 원형(圓形), 즉 독점의 서클이 완성된다. 거대 양당에서 모두 원내 기득권이 강화되는 가운데, 정치 효능감은 떨어지고 혐오는 커지는 상황,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인적 충원은 손쉬운 명망가 엘리트 영입으로 이뤄지고, 세를 규합하기 어려운 청년은 여전히 의사결정 구조 밖에서 신음하며, 삶의 질 개선조차 요원한 악순환의 고리다. 이 서클에서 청년의 자리에 다른 정체성을 끼워 넣어도 상황은 비슷하다. 노동자, 여성, 성 소수자, 지방 등.

김유정 아르스프락시아 연구원은 “의미연결망상에 도출된 문제의식을 종합하면 현재 구조의 정당을 통한 청년들의 정치는 입문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청년 세대 문제 해결에 대한 필요성,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나 각종 난제를 실제 해결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라고 분석했다.

거대 양당 구조가 문제의 중요 축을 차지하는 만큼, 이 구조를 두는 한 변화가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생물학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꼭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게 현재의 핵심은 아닌 것 같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지방대 출신, 고졸, 블루칼라 노동자인 청년 세대를 대변할 이들이 정치 영역에 진출할 수 있느냐 여부를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젊은이를 국회로 불러들이겠다는 방식은 정치적 냉소만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수 양당 구조를 그대로 두고 그 속에 청년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실패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2030세대가 이 독점 서클의 해체를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삶으로 그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두 청년은 이렇게 묻는다. “만약 비정규직 출신 청년이, 목숨 걸고 일해야 했던 사람들이 국회에 있었다면, 김용균과 같은 청년들이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을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여성들이 국회에 있었다면 불법 촬영물 등 사태가 여기까지 왔을까.”(김선경 민중당 공동대표) “386세대(현재 586세대)는 지금 이 세계를 구성한 이들이지만, 20대와 30대는 이 세계를 가장 오래 살아내야 할 사람들이다. 이 구조나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원리에 대해 당연히 가장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뭘 아느냐’거나 ‘고민이 부족하다’고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백상진 마을학교 소장ㆍ정의당 고양병지역위 부위원장)

강원택 교수 역시 “4차 산업혁명, 고용 없는 성장 등 사회경제적 변화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이 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세대의 대표자가 국회에 한두 명만 구색 맞추기 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적극적인 조치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내년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310여일. 저마다의 얼굴과 표정을 지닌 시민 당사자들은 묻고 있다. 청년 및 당사자들을 이용만 하려는 이는 누구인가. 독점 서클 해체에 반대하는 장본인은 누구인가. 그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젊고 개혁적인 정치 지도자의 등장, 시민 구성과 닮은 의회는 언제까지 남의 나라 풍문이어야 하는가.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조희연 인턴기자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또한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 무대에서 ‘젊은 정치’가 얼마나 구현될 수 있을지, 그리고 지독한 국회의 세대 불균형은 바로 잡을 수 있을지 모두가 원하는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입니다. 과연 한국 사회도 머지않은 미래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출중한 젊은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여러 정치권 인사와 정치신인들에 대한 인터뷰, 각종 데이터 분석, 여론조사, 제도 검토를 통해 짚어봤습니다. 1부 기사(4회)는 6월 한 달간 연재(월요일자)합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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