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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금단지 묻기와 강릉단오제

입력
2019.06.06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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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를 앞두고 창포머리감기 전통민속행사를 벌여 많은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단오를 앞두고 창포머리감기 전통민속행사를 벌여 많은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단오(端午)는 설과 추석 그리고 한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꼽히는 중요한 날이다. 요즘에야 많이 퇴색했지만, 과거에 5월 5일 단오는 1년의 중앙으로써 양기가 치성한 벽사의 명절이었다.

어떤 분들은 ‘5월 5일이 어떻게 1년의 중앙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에서 10 이상은 치지 않으며, 또 홀수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전통 명절은 홀수가 겹치는 1ㆍ1(설), 3ㆍ3(삼짇날), 5ㆍ5(단오), 7ㆍ7(칠석), 9ㆍ9(중양절)가 되며, 11ㆍ11은 없다. 해서 11월 11일은 막대 과자 데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오에서 단(端)은 바름을 나타내며, 오(午)는 남쪽을 의미한다. 예전 12지에 따라 시간을 사용할 때, ‘자(子)는 북쪽’, ‘오(午)는 남쪽’이 된다. 이로 인해 자오축 또는 자오선이라는 말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오란 중앙으로 남쪽이며, 5월 5일 단오는 남쪽의 양기가 올바로 확립되는 복판이라는 의미가 된다.

단오의 다른 명칭에 천중절(天中節)이 있는데, 이 역시 하늘의 중앙 즉 가운데라는 뜻이다. 때론 단양(端陽)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양기가 바르게 되었다는 말이니 단오와 같은 말이다.

단오의 우리말은 수릿날이다. 여기에서 수리란 정수리에서처럼 으뜸을 나타낸다. 즉 단오가 1년의 중앙으로 벼리가 된다는 말이다.

단오가 되면, 농번기가 끝난 농부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또 여성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 정갈히 재계하며, 남성은 씨름 등의 놀이를 통해 지친 농사일의 고됨을 쉰다.

그런데 단오부터는 양기가 치성하다 보니, 기운이 들뜨거나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존재한다. 해서 이를 눌러주는 놀이가 바로 여성들이 그네를 높이 띄워 타게 하는 행위다. 여성을 높이 솟구치게 해, 그 음기로 치솟는 양기를 중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목조건물이 많아 화재에 민감한 사찰에서는 단오를 기해 주변에 소금단지를 묻거나 전각의 귀퉁이에 올려놓는 의식을 행하곤 한다. 소금을 바닷물의 정수로 보아, 물기운으로 화기를 누르겠다는 상징이다. 요즘으로 치면 대대적인 불조심 홍보교육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단오 풍습 중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는 우리의 단오가 얼마나 유서 깊고 독창적인 문화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는 우리의 등재를 매우 못마땅해 했었다. 중국의 단오 풍습이 우리에게 전래한 것이라는 관점 때문이다.

중국의 단오제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BC 343?∼BC 278)이 5월 5일에 멱라강에 투신 자살한 것을 추모하는 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강릉단오제는 신라 말의 고승인 범일국사(810∼889)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철저하게 우리 식의 단오제다. 즉 명칭만 같지 완전히 다른 단오제인 셈이다.

범일국사는 당나라에 유학해서 선불교를 수학한 후 강릉에 정착해 9산 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문을 개창한 고승이다. 범일국사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조선 시대 불교가 쇠퇴한 후에도 민중들에게 살아남아,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으로까지 숭배되었겠는가! 고승에 대한 이야기가 민간화되면서 신으로까지 변모한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활약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자, 신통으로 일본 국왕을 혼내준다는 이야기가 군담소설인 ‘임진록’에 등장한다. 민중과 함께한 고승은 유교 시대에도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의 그림자를 역력히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단오는 예전과 달리 이제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전통에 대한 망각은 또 다른 창작과 활력의 가능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들로 하여금 깊은 사색을 해보게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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