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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감독상’ 다르덴 형제 “인간이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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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감독상’ 다르덴 형제 “인간이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입력
2019.06.05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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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영 아메드’로 감독상을 수상한 장-피에르 다르덴(왼쪽)ㆍ뤼크 다르덴 형제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영 아메드’로 감독상을 수상한 장-피에르 다르덴(왼쪽)ㆍ뤼크 다르덴 형제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칸영화제에서 ‘영 아메드’로 감독상을 수상한 장-피에르 다르덴(왼쪽)ㆍ뤽 다르덴 형제 감독. 칸=김표향 기자
올해 칸영화제에서 ‘영 아메드’로 감독상을 수상한 장-피에르 다르덴(왼쪽)ㆍ뤽 다르덴 형제 감독. 칸=김표향 기자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겨뤘던 영화들 중에 ‘영 아메드(Young Ahmed)’가 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벨기에 작가주의 거장 장-피에르 다르덴(68)ㆍ뤼크 다르덴(65) 형제 감독의 신작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 아랍어 여교사를 죽이려 한 열세 살 무슬림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로 다르덴 형제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빈곤, 실업, 소외, 차별 등 사회 부조리 한가운데에 던져진 평범한 사람들의 분투를 담담히 관찰하면서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와 구원 가능성에 대해 질문해 왔다. 빈민촌에 사는 무직 소녀를 그린 ‘로제타’(1999)와 암시장에 갓난아이를 내다 판 젊은 부랑자 부부의 이야기 ‘더 차일드’(2005)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아들’(2002)과 ‘로나의 침묵’(2008) ‘자전거 탄 소년’(2011)으로 각각 최우수남자배우상, 각본상,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아르가 출연한 ‘내일을 위한 시간’(2014)과 ‘언노운 걸’(2017)로 한국 관객과 만났다. ‘로제타’는 최근 국내 개봉해 상영 중이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1970년대 초 다큐멘터리로 영화 인생을 시작해 8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연출하거나 제작했다. 1986년 ‘잘못된(falsch)’을 선보이며 극영화로 발을 넓혔다. 이들은 핸드헬드 카메라와 롱테이크 촬영으로 삶의 진실을 사실 그대로 스크린에 실어 나른다. “네 개의 눈을 가진 한 사람”이라 불리는 다르덴 형제 감독을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칸에서 마주했다.

영화 ‘영 아메드’는 유럽 사회를 뒤흔든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진단하고 성찰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영 아메드’는 유럽 사회를 뒤흔든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진단하고 성찰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종교 문제를 다룬 이유는. 

“오늘날 이슬람 광신도에 의한 테러는 프랑스와 벨기에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아니다. 다만 무슬림 소년 아메드라는 인물을 구상했을 때 지금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이슈, 즉 종교에 대해 말할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종교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만들어낸 믿음이지만, 종교에 대한 맹신은 사람들에게 우월감과 권력에 대한 망상, 위대한 무언가에 동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 결국 순교자인 양 자신을 죽음에 내던지는 극단에까지 이르게 한다.”

 -테러리즘 취재는 어떻게 했나. 

“우리는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와 조사를 많이 해야 했다.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을 다수 만나 본 상담사와 심리학자들을 인터뷰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주인공은 왜 10대 소년으로 설정했나. 

“테러로 인한 수많은 죽음들을 접하면 픽션이 허망하게 느껴지곤 한다.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캐릭터에 현실감이 없다면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할 수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든 소년이어야 했다. 이 나이 대 소년들은 강렬한 신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또한 그만큼 변화할 가능성도 크다. ‘인간은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영화로 제시하고 싶었던 화두다.”

199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로제타’. 최근 한국에서 20년 만에 지각 개봉했다. 찬란 제공
199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로제타’. 최근 한국에서 20년 만에 지각 개봉했다. 찬란 제공
다르덴 형제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더 차일드’.
다르덴 형제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더 차일드’.

 -인간은 왜 맹신에 빠질까. 

“소설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훗날 회고록에서 자신이 14, 15세 때 나치의 무장친위대 소속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문했고, 유혹당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혹, 그것이 바로 맹신이다. 물론 모두가 유혹에 넘어가는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사람들에게 증오를 이식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실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ㆍ경제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요즘과는 달리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싸우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종교적 맹신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나. 

“최근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수많은 테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주의가 여전히 굳건하다고 믿는다. 역설적이게도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서구 사회도 이슬람교 신자는 곧 맹신주의자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민주주의와 이슬람교가 공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유럽의 새로운 전통이 될 거라 확신한다.”

 -낙관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 건가. 

“이 영화와 관계없이 지나친 낙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인간은 종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상의 감옥도 마찬가지다.”

해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린 ‘내일을 위한 시간’. 주연배우 마리옹 코티아르는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해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린 ‘내일을 위한 시간’. 주연배우 마리옹 코티아르는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천착하며 당대에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를 다뤄 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고 있을 법한 곳의 이야기, 옆집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관객이 영화 속 인물에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현실과 괴리된 요소들은 제거하려고 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폭발물이나 총기를 동원해 테러를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메드가 작은 칼을 손에 쥐었을 때 비록 살인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 자체가 테러처럼 끔찍하게 느껴질 거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행동에 집중하려 한다.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거다.”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우리가 만든 영화가 교육적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영 아메드’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자신을 가두었던 소년이 그 감옥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사회 현실에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지만 다 함께 질문하고 토론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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